당대 신하들도 허락 없이는 함부로 쳐다볼 수 없었던 임금의 얼굴을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임금의 초상화 ‘어진(御眞)’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1744년 영조20년 8월 20일 신시 경덕궁 경현당. 영조는 어진을 살펴보지 못한 지가 오래됐는데 그 사이 무슨 흠이라도 생기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며, 어진을 가져오도록 지시했다.
조현명: 백낙천이 지은 시에 ‘나이 많은 형이 어린 아우를 마주 대하는 듯하다.’라고 했는데 그 표현이 맞습니다.
영 조: 10년 사이에 이렇게 달라졌으니 나이 많은 형이 어린 아우를 마주 대하는 듯하다는 표현이 참으로 맞구나.
영 조: 옆에서 보면 그다지 늙은 것처럼 보이지 않는데, 정면에서 보니 늙긴 늙었구나. 이건 내 40세 때 모습을 본떠 그린 것이다. 경들은 다가와서 상세히 보라.
영 조: 장득만(張得萬)은 더 자세히 보되 눈이 나빠 잘 안 보이면 안경을 쓰고서 보라.
영 조: 현저히 다른가?
조현명: 크게 다릅니다. 수염과 머리카락이 옛 모습과 다를 뿐만 아니라 성상의 안색도 이 어진의 모습과 다릅니다.
영 조: 경들이 항상 나를 두고 안 늙었다고 하더니 지금은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장득만: 10년이 지나서 어진을 보니 지금의 용안과 크게 다릅니다. 전에는 홍조를 띠고 윤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수염이 세어 하얗게 됐고 안색도 많이 안 좋으며 혈색도 없어졌습니다.
영 조: 저기도 흰 수염이 있구먼, 뭘.
이 당시 영조의 모습은 현재 50세 때의 영조 어진으로 남아 있다.
옛 사람들은 “털끝 하나만 달라도 다른 사람이다.”라고 했다. 멋지고 예쁘게 꾸미려고 사진에도 덧칠을 하는 지금과는 많이 다른 풍경이다.
<한국고전번역원 번역위원 곽성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