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낙엽은 계절의 정취를 더해주지만, 애써 쓸어도 다시 쌓이는 골칫거리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 낙엽은 지금보다는 좀 더 쓸모 있는 물건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양질의 목재를 확보하기 위해 소나무 벌목 금지령이 내려진 곳이 많았다. 이런 곳에서는 낙엽의 채취도 금지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낙엽은 썩으면서 나무에 양분을 제공해 숲을 무성하게 하는 천연 비료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백성들이 몰래 산에서 낙엽을 모으고 나무까지 베어가는 경우가 많아 문제가 생기곤 했다. 백성들에게는 땔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특히 한겨울에 더욱 절실했다. 그러다 보니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정조 15년(1791) 11월 21일에 있었던 일이다.
병조 : 방금 경복궁의 위장 윤재함의 보고를 받아보니, ‘어젯밤에 백성 5명이 신무문 근처에서 담을 넘어 들어와 낙엽을 훔쳐 가려 하다가 1명은 수직군(守直軍)에게 체포되고, 4명은 도주했습니다. 해당 부서에 즉시 통보했는데 지금 1명을 더 체포했고 3명은 여전히 도망쳐 숨어 있는 상황입니다.’라 하였습니다. 무뢰배들이 제멋대로 궁궐 담장을 넘어와 도둑질을 했으니, 해괴하기 짝이 없는 상황입니다. 해당 관서에 명해 도망쳐 숨은 3명을 체포하게 하여 앞서 체포한 2명과 함께 법률에 따라 처벌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정조 : 솜옷이 부러질 만큼 추워 솜이 금보다 귀한 시기에 이런 일로 붙잡혔으니 궁궐 담장을 넘은 죄에 해당하는 법률로 처벌할 수는 없다. 경이 정상을 참작해 벌을 내린 뒤에 풀어주도록 하라.
오죽하면 그랬을까 하는 마음으로 처벌을 가볍게 해 준 왕의 처분은 높이 살 만하지만, 풀려난 뒤에도 생존을 위해 땔감을 구하러 다녀야 하는 백성들의 고충이 없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너그러이 용서하기보다는 애초에 용서할 일이 생기지 않게 하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최두헌(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