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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낙청 없는 창비, 변화 올까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창비 50년은 시련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특히 저의 퇴임을 준비하던 최근 반년 남짓은 정치적 탄압이나 경제적 위기와도 또 다른 시련의 기간이었습니다.”

한국현대사의 굴곡 속에서 한국문학과 사상계를 앞에서 이끌어온 백낙청(77) 계간 창작과비평 편집인이 그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창비에서 25일 물러났다.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자사 통합문학상 시상식에서 그는 “계간지 일에서만은 깨끗이 손을 뗄 작정”이라고 밝혔다. 꼭 50년만이다. 

그에게 신경숙 표절사태로 인한 아픔과 고뇌가 유신과 신군부의 군사독재, 경제 위기 시절 창비의 존폐를 걱정해야 했던 무게만큼이나 컸다는 얘기다.
이날 퇴임사에서 그는 “창비는 어쨌든 부끄러움보다 긍지를 느낄 일이 더 많은 동네라며, 온갖 역경을 딛고 이만큼의 연륜을 쌓고 이만큼의 명성을 얻으며 이만큼의 물적 기반을 마련했다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라고 자평했다. “실력에 따르는 책무를 여축없이 완수하지는 못했을지라도 책임의 엄숙함을 아예 외면한 일은 결코 없었다”고도 했다.

이 날 백 편집인은 신경숙 표절 시비와 관련한 입장도 밝혔다.

“한 작가의 과오에 대한 지나치고 일방적인 단죄에 합류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부패한 공범자로 비난받는 분위기에서, 그 어떤 정무적 판단보다 진실과 사실관계를 존중코자 한 것이 창비의 입장이요 고집이었다”고 설명했다. 한 소설가의 인격과 문학적 성과에 대한 옹호를 넘어 한국 문학의 품위와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자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이다. 백 교수는 “ 이것이 창비의 다음 50년을 이어갈 후진들에게 넘겨줄 자랑스러운 유산의 일부”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는 창비의 독자와의 소통능력이나 평소 문학동료들과의 유대 형성, 사내 시스템의 작동 등에 큰 문제가 있었다고 돌아봤다.

그의 나이 스물여덟살, 1966년 1월 창간한 계간 창작과비평은 해방후 문학공간에 민족문학이란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며 한국문학과 사상을 견인했다. 90년대 냉전시대의 종식 이후에는 분단체제 변혁론으로 방향을 잡아 지성인들의 담론의 장을 제공해왔으며 지난 대선을 앞두고는 중도 개혁론인 ’2013체제론‘을 내세운 바 있다. 혼란의 시대에 현실을 바라보는 프레임(틀)을 줄곧 제시해왔다는데 백 편집인의 공이 있다.

백 편집인의 퇴진으로 무엇보다 창비의 변화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창비는 편집인은 따로 두지 않기로 했다. 함께 물러나는 백영서 주간 후임에는 백낙청 교수의 제자이자 현 부주간인 한기욱 인제대 교수가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백 교수가 창비의 편집인의 자리에서 물러나지만 창비가 오래 쌓아온 특유의 지적 공동체 문화에서 벗어나날지는 미지수다. 새 주간과 발행인 역시 창비 유산의 공유라는 차원에서 큰 변화는 없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백 교수와 창비 편집위원, 필진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는 또 다른 지적공동체인 세교연구소와 ‘창비’의 관계도 관심사다.

이와 관련, 이시영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은 “백 선생 퇴임 뒤 어떤 체제가 들어서더라도 백 선생의 강력한 자장은 어떤 식으로든 작동하지 않을까 한다”고 진단했다.

반면 창비의 대중 소통 채널은 더 다각화할 것으로 보인다.
창비는 최근 팟캐스 시즌 2를 시작한 데 이어 지난달 사단법인 창비학당을 설립, 새해에 문을 열 예정이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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