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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방 안에서 봉지에 가득 담긴 귤을 야금야금 까먹으며 뒹구는 것은 겨울날의 큰 즐거움 중 하나다. 요즘은 귤을 쉽고 저렴하게 구할 수 있지만 조선시대에는 귤이 매우 귀했다. 일반 백성은 물론이고 양반도 쉽게 구할 수 없었다. 임금이 특별히 하사해야 맛을 볼 수 있었다. 현종 원년(1660) 11월 20일 밤, 현종은 야대를 거행한다. 야대는 임금이 야간에 신하들을 불러 경전과 역사서를 강독하기도 하고 중요한 정사를 의논하기도 하는 자리이다. 이날의 일기에 강독이 끝난 뒤의 상황이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강독이 끝나자 주상이 내시를 시켜 신하들에게 귤을 내려주게 했다.
남용익 : 보잘것없는 신이 가까운 곳에서 모시며 두터운 은택을 입은 것만도 평소에 매우 황공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신선의 과일을 내려주시니 더더욱 큰 예우를 받은 것입니다. 엎드려 받으며 감격하여 뭐라 아뢸 말씀이 없습니다.
현종 : 기나긴 밤 강독을 하느라 분명 입술이 바짝 말랐을 것이기에 하사하는 것이다.
오랜 시간 많은 말을 하느라 지치고 입이 마른 신하들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차고 신 귤 맛에 정신이 번쩍 들었을 것이다. 숙종 15년(1689) 12월 27일 기사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다.
야대를 마치고 신하들이 물러나가려 하자 주상이 말했다. “잠시 기다리시오.” 잠시 후 내시들이 귤이 든 쟁반을 높이 들고 나와 신하들 앞에 쟁반 하나씩 놓았다. 신하들이 맛을 보고 각자 남은 귤을 소매에 넣고 물러 나갔다. 시각은 밤 2경 5점이었다.
2경 5점은 밤 11시에 가까운 시각이다. 당시의 생활 패턴을 고려하면 매우 늦은 시각이다. 귀한 음식을 내릴 만도 하다. 몇 개는 먹고, 몇 개는 소매에 넣어 가지고 나오는 신하들의 모습이 재밌다. 늦은 밤 바짝 마른 입안에 털어 넣은 귤은 어떤 맛이었을까?
최두헌(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