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은 친히 ‘천자문(千字文)’을 짓고 서문(序文)에, ‘타고난 성품이 총명하여 지혜가 나날이 발전한다.’라고 써 동궁을 칭찬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전통적인 문자 교육은 ‘천자문’으로 시작했다. 왕실도 예외가 아니었다. 천자문은 6세기에 중국 양나라 무제의 명령으로 주흥사가 지은 것으로, 고전에서 내용을 뽑아 각기 다른 한자 1000자로 사언고시 250구를 지었다하여 ‘천자문’ 이라 했다.
이 책이 우리나라에 전래된 시기와 경위에 대한 명확한 기록은 없다. 다만 일본사서에 백제의 왕인이라는 학자가 논어와 천자문을 가지고 일본으로 왔다는 기록이 있어 그즈음 우리나라에 전래되고 다시 일본에도 전해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왕실에서 쓴 천자문은 유일본이 장서각에 소장돼 있다. 장정과 종이, 글씨 등이 호사롭다. 이 책의 용도는 왕실에서 행한 돌잔치에서 돌잡이용으로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장서각 소장 왕실 ‘천자문’은 원래 봉모당에 소장된 것으로 여섯가지 색지, 적, 청, 황, 홍, 록, 백(赤, 靑, 黃, 紅, 綠, 白)을 반복적으로 사용, 전체 42장에 걸쳐 각각 7회씩 반복해 천자문을 필사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원장 이기동)이 초학의 교재로 오랫동안 널리 사용된 장서각 소장 왕실 천자문을 역해해 내놨다. 이 자료를 역해한 ‘천자문-장서각 소장 왕실 천자문 역해’는 왕실 자료의 문화사적 가치를 알리기 위한 것으로 천자문을 대상으로 번역과 해설을 적었다. 한중연은 이후 왕실 천자문에 대해 보다 쉽게 쓴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쉽게 풀어 쓴 책도 출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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