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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년 구도의 길 ‘둥지철학자’, 박이문 교수 별세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병상에 누워 있는 지금도 별과 구름, 산과 바다, 새와 꽃을 노래하고 아름답고 우아한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에 나는 자주 사무친다.” 

한국인문학계의 거장, 세계적인 철학자, 박이문(본명 박인희) 포항공대 명예교수가 26일 오후 10시 타계했다. 향년 87세. 고인은 얼마전 일산의 한 노인요양원에서 생의 끝자락을 보내며 이런 고백을 했다.

우아한 시에 대한 갈망과 예술혼, 실존의 허무와 명료한 사유를 오간 시인이자 ‘둥지’의 철학자인 그는 그렇게 단순명료한 세계를 동경하며 생을 마감했다. 그가 떠난 자리엔 그의 독창적 사유의 산물인 ‘둥지’가 남았다.

고인은 1930년 충남 아산 시골 마을의 유학자 집안 출신으로 유학 중 귀국한 형의 영향으로 어린시절부터 시인을 꿈꿨다. 청년기에 전쟁의 참화 속에서 입대, 훈련 도중 병을 얻어 의병제대한 뒤, 피난 시절 부산에서 서울대 불문학과에 입학, 본격적으로 문학에 매진한다. 서른한살에 이화여대 전임교수로 발탁됐지만 지적방랑의 길을 떠난다. 프랑스 소르본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보스턴에서 대학교수 생활을 하다 3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와 이화여대, 서울대, 포항공대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고인은 쟈크 데리다 등 당대 세계적인 사상가들의 가르침을 배웠지만 인류의 보편성을 아우르는 자신만의 철학을 세우려 했다. 그 결과가 바로 ‘둥지의 철학’으로, 모든 새들이 깃들 둥지를 갖는 것처럼 모든 사람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나름의 개념적 둥지를 만들고 개선한다는 것이다. “새의 둥지가 안전과 평화를 제공하듯 둥지철학은 인간 각각의 자유와 행복을 목표로 한다. 자신의 삶에서 만난 다양한 개념과 언어를 활용해 관념의 둥지를 짓는다. 누구라도 인간적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관념의 둥지를 틀어야만 한다.”는게 그의 철학의 핵심이다.


500여편의 시를 쓴 시인이기도 한 고인은 명료함을 바탕으로 한 철학과 모호함이 생리인 시의 모순, 세상의 질서와 혼돈을 새로운 창조란 둥지의 개념으로 아울러낸 것이다.

저서로는 ‘시와 과학’, ‘철학이란 무엇인가’, ‘예술철학’, ‘둥지의 철학’, ‘과학의 도전, 철학의 응전’, ‘당신에겐 철학이 있습니까’, ‘문학 속의 철학’ 등 100여 권의 저작을 남겼으며 ‘박이문 인문학전집 전10권’이 나와있다. 특히 그의 필생의 저서인 ‘둥지의 철학’은 영국의 사프론(Saffron) 출판사에서 2015년 출간되는 등 그의 저서는 독일과 중국 등 외국에서도 다수 출판됐다.

2006년 인촌상(인문사회문학부문)을 수상했고, 2010년에는 프랑스 정부 문화훈장(교육공로)을 수상했으며, 2012년에는 대한화학회가 제정한 ‘탄소문화상’ 제1회 수상자로 대상을 받은 바 있다.

유족으로는 유영숙 여사와 아들 장욱씨가 있다. 빈소는 연세대학교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13호실, 발인은 3월 29일이며, 장지는 국립 이천호국원이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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