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문학계의 거장, 세계적인 철학자, 박이문(본명 박인희·사진) 포항공대 명예교수가 얼마전 일산의 한 노인요양원에서 생의 끝자락을 보내며 이런 고백을 했다. 시에 대한 갈망과 뜨거운 예술혼, 실존의 허무와 명료한 사유를 오간시인이자 철학자인 박 교수가 26일 오후 10시 타계했다. 향년 87세.
철학·문학·예술을 아우르며 진리탐구의 끈을 놓치않았던 고인은 인류의 보편성을 아우르는 자신만의 철학을 세우려 애썼고, 결국 ‘둥지의 철학’을 낳았다.
1930년 충남 아산 시골 마을의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피난 시절 부산에서 서울대 불문학과에 입학, 본격적으로 문학에 매진한다. 서른한 살에 이화여대 전임교수로 발탁됐지만 지적방랑의 길을 떠나 프랑스 소르본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보스턴에서 대학교수 생활을 하다 3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와 이화여대, 서울대, 포항공대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고인은 쟈크 데리다 등 당대 세계적인 사상가들의 가르침을 배웠지만 동서양과 문명, 자연, 종교를 넘나드는 자신만의 사유의 우물을 파나갔다. 그 결과가 바로 ‘둥지의 철학’으로, 모든 새들이 깃들 둥지를 갖는 것처럼 모든 사람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나름의 개념적 둥지를 만들고 개선한다는 것이다. “새의 둥지가 안전과 평화를 제공하듯 둥지철학은 인간 각각의 자유와 행복을 목표로 한다. 자신의 삶에서 만난 다양한 개념과 언어를 활용해 관념의 둥지를 짓는다. 누구라도 인간적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관념의 둥지를 틀어야만 한다.”는게 그의 철학의 핵심이다.
저서로는 ‘시와 과학’, ‘철학이란 무엇인가’, ‘예술철학’, ‘둥지의 철학’ 등 100여 권을 남겼으며, 그의 필생의 저서인 ‘둥지의 철학’은 영국 사프론 출판사에서 출간되기도 했다. 2006년엔 인촌상을, 2010년에는 프랑스 정부 문화훈장(교육공로)을 수상했다.
유족으로는 유영숙 여사와 아들 장욱씨가 있다. 빈소는 연세대학교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13호실, 발인은 3월 29, 장지는 국립 이천호국원이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