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표준과학연구원과 서울대 연구팀이 아시아 최초로 개발한 한국인 유전체 표준물질.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제공] |
[헤랄드경제=이정아 기자] 암, 치매 등 각종 질병 연구에 널리 활용되고 있는 유전체 분석이 얼마나 정확한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비교 잣대인 표준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연구진들은 서양인의 표준을 들여다 썼다. 그러나 국내 연구진이 한국인의 독자적인 유전자 물질을 표준화하는데 성공했다.
배영경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바이오분석표준센터 선임연구원과 양인철 책임연구원, 성주헌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팀은 최근 차세대염기서열해독(NGS) 기술을 이용해 한국인의 유전체를 정밀하게 해독했다. 이후 연구팀은 여러 단계의 교차 분석을 통해 정확도를 검증받아 이를 국제 표준 규격의 인정을 받은 한국인 유전체 표준물질로 등록했다. 이는 세계 두 번째, 아시아에서는 최초다.
유전체는 인간의 유전자 정보를 담은 이른바 ‘책’과 같다. 유전체라는 책은 유전자라는 ‘문장’들이 모여 완성된다. 그리고 유전자는 ‘글자’와도 같은 DNA 염기서열로 이뤄진다. 그런데 이 책은 인종, 국가 등 특정 집단마다 유사한 특징을 지닌다. 한국인에게 맞는 치료법을 개발하기 위해서 한국인의 특성이 반영된 유전자 정보를 기준으로 분석해야 하는 이유다.
이를 위해 연구팀은 국내에서 기증받은 한 개인의 유전체를 NGS 방법으로 해독했다. NGS는 하나의 유전체를 무수히 많은 조각으로 분해한 다음, 이를 재조합해 방대한 유전체 정보를 빠르게 해독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NGS는 태생적으로 실험 방법이나 재조립 과정의 차이로 검사 업체마다 약간의 오차를 만든다. 미미한 오차라도 진단 결과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기술의 정확도를 평가하는 기준이 필요했다.
이러한 기준을 만들기 위해 연구팀은 염기서열을 기존보다 100배 길이로 정확하게 읽는 기술로 유전체를 해독했다. 이는 하나의 염기서열을 100번에 걸쳐 읽어내 분석했다는 의미다.
이후 연구팀은 이렇게 얻은 유전체 정보 가운데 표준으로 볼 수 있는 염기서열을 280만 개로 추렸다. 30억 개에 달하는 유전체 모두를 비교할 수 없기 때문에 핵심이 되는 280만 곳만 비교하면 표준과 얼마나 다른지 확인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280만 개는 미국표준기술연구소(NIST)의 서양인 유전체 표준보다 30% 많은 수다.
연구팀은 이렇게 해독한 정보가 표준으로 작동하는지 검증하기 위해 NIST의 서양인 유전체 표준과 비교했다. 그 결과 ‘99.9%가 맞다’는 사실을 인정받았다. 또 자체적으로 150개 유전물질을 선정해 정밀하게 재검정해 표준으로서의 유효성을 다시 한번 검증했다.
한국인 유전체 표준물질이 개발되면서 국내 업체들은 전량 수입해서 쓰던 NIST의 서양인 유전체 표준물질에 의존하지 않게 됐다. 배 선임연구원은 헤럴드경제와의 통화에서 “이번 연구를 기반으로 한국인은 물론 나아가 아시아인의 유전체 검사 과정에서 놓쳤던 변이를 찾아내 맞춤형 진단이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산업통상자원부,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의 ‘한국인 표준 게놈지도 작성: 유전체 대동여지도 사업’으로부터 지원받아 수행됐다.
dsu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