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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문’을 깨고 ‘구름’ 위로 치솟은 나델라…MS, 왕관을 되찾다
스마트폰 혁명 감지 못해 멸종될 뻔
나델라, 클라우드로 MS에 르네상스
과거와 결별…경쟁자와 과감한 제휴
4~6월 매출 337억弗 역대 분기 최고
미래먹거리 AI·MR“또 한번 비상”

지난 5월 ‘레드햇 서밋 2019’에서 주인공은 짐 화이트허스트 레드햇 최고경영자(CEO)가 아니었다. 깜짝 등장한 마이크로소프트(MS)의 CEO인 사티아 나델라였다. 윈도우와 리눅스를 내세워 서로를 향해 으르렁 대던 두 기술(IT)기업 대표가 환한 표정으로 공개석상에서 악수를 하는 모습은 불과 5년 전만해도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나델라의 이날 등장은 MS가 이제 더이상 윈도우 같은 소프트웨어 CD를 파는 회사가 아니라는 사실에 마침표를 찍는 상징이었다.

IT세계의 창문(Windows)을 연 모험가(Explorer) = MS에 대한 수식은 화려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빌 게이츠라는 초대 CEO의 드라마 같은 창업 스토리, 전세계 PC운영체제(OS)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한 IT 공룡. 찰스 오리어라는 사진작가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그가 1996년 촬영해 ‘행복’(Bliss)이라고 이름 붙인 캘리포니아주 소노마 카운티의 맑은 하늘과 푸르른 언덕 사진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빌 게이츠의 뒤를 이어 2000년 2대 CEO에 오른 스티브 발머는 이 모든 영광을 빠르게 지워버렸다. 2007년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하자 그는 장난치지 말라며 비웃었다. IT세계의 흐름이 PC에서 모바일로 변하고 있던 걸 발머는 몰랐던 것이다.

아이폰이 몰고온 스마트폰 혁신이 OS 판도를 뒤흔들자 뒤늦게 노키아를 인수해 스마트폰을 내놓았지만, MS가 윈도우폰이라는 스마트폰을 만들었는지조차 아는 사람이 드물 정도로 철저히 패했다. 웹브라우저 시장은 어느새 구글 크롬이 빠르게 세를 확보하고 있었다. 현재 익스플로러의 시장점유율은 3%도 채 되지 못한다. 2014년 발머가 은퇴를 발표하자 MS주가가 반등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질 정도였다.

실리콘밸리에선 MS가 모토로라의 길을 갈 것이란 우려가 제기됐다. 게임기인 Xbox를 만드는 그저 그런 제조업체가 될 것이란 비웃음도 나왔다. 협력과 소통보다는 커진 덩치를 주체하지 못해 칸막이에 갇혀 하루하루 버텨내기 급급한 공룡이란 비판이 일었다. 빌 게이츠가 복귀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됐지만 구원투수로 등장한 사람이 나델라였다. 1992년 MS에 입사한 젊은 인도인 개발자는 20여년 만에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그것도 클라우드 부문 수석 부사장에서 단숨에 CEO로 파격 승진을 한 것이다.

인도 최고 IT인재의 성공신화 = 나델라는 1967년 인도 하이데라바드에서 태어났다. 맹갈로대 부속 마니팔 공과대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한 뒤 미국 위스콘신-밀워키대에서 컴퓨터 공학 석사학위를 땄다. 이후 시카고대에서 MBA(경영학 석사)를 이수했다. 그런 그가 당시 IT인재들이 꿈꾸는 최고 기업 MS에 입사한 건 당연한 수순이다. 나델라는 지난 5월 열린 MS의 연례 개발자 행사 ‘빌드(build)2019’에서 “MS 합류를 결정한 1991년 나도 빌드를 관중석에서 봤다”고 말해 6000여명의 개발자들로부터 부러움에 가득찬 박수를 받았다.

MS 입사 후엔 온라인서비스연구개발 부문과 서버 부문 등을 거쳐 클라우드 부문 수석부사장 등 MS의 기술 개발을 두루 경험했다. 특히 그는 클라우드 부문을 맡으면서 빠르게 두각을 나타냈다. 오피스를 클라우드로 옮긴 오피스365 등을 선보이는 등 클라우드를 MS의 핵심 사업으로 키웠다. 2012년엔 마침내 클라우드 부문 매출이 윈도 사업부를 뛰어 넘어 섰다. 현재 그는 글로벌 IT업계에서 가장 성공한 그리고 여전히 앞날이 기대되는 인도인으로 평가된다. 나델라 외에도 인도 출신 IT기업 CEO로 구글의 선다 피차이, 노키아의 라지브 수리 등이 있다.

창문을 깨고 구름(Clouds) 위에 오르다 = 미국 경제매체 블룸버그비즈니스위크는 5월 나델라를 표지에 실으면서 ‘나델랑스’(Nadellaissance)라고 썼다. 나델라와 르네상스의 합성어로, 그가 MS를 부활시켰다는 것이다.

나델라는 MS라는 이름만 남겼을 뿐 모든 것을 바꿨다. 노키아부터 팔아버렸다. 클라우드 서비스 이름도 ‘윈도우 애저’에서 애저로 바꿨다. 빌드2019에선 아예 윈도우를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과거의 영광이었지만 어느새 발목을 잡고 있던 ‘MS=윈도우’란 고정관념은 그렇게 내부로부터 파괴됐다. 대신 ‘클라우드 퍼스트’ 슬로건 아래 과감한 체질 개선에 나섰다. 클라우드가 인공지능, 머신러닝,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핵심 기술의 근간이자 데이터를 보관하고 분석할 수 있는 최적의 도구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나델라는 데이터센터를 적극 확장하면서 기존 MS의 핵심 제품인 오피스와 연동하는 서비스를 제공했다. 경쟁업체 아마존보다 4년이나 늦게 클라우드 시장에 진출했지만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데이터센터를 운영하고 기업 고객에 집중하는 등 효과적인 전략으로 아마존의 클라우드 시장 점유율을 야금야금 빼앗았다. 현재 포춘 선정 500대 기업의 90%는 MS 클라우드 고객사다. MS의 클라우드 부문은 2019회계연도 4분기(4~6월) 기준 전년 동기 대비 68% 증가한데 비해 아마존 클라우드 부문은 46% 성장하는데 그쳤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글로벌 퍼블릭 클라우드 시장이 2017년 1500억 달러에서 2021년 300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MS가 이처럼 성장하는 클라우드 시장을 얼마나 석권할 수 있을까? 주식시장은 MS에 대한 기대를 주가로 설명해주고 있다. MS는 지난 2017년 11월 글로벌 시가총액 1위 자리에 올랐다. 1997년부터 1999년 사이 1위 자리를 차지한 적이 있지만 닷컴 버블의 후광이 컸던 점을 감안하면 20년 만에 다시 MS를 시총 1위에 올려 놓은 나델라의 선택과 집중에 더 후한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

MS가 그렇게 나델라 지휘 아래 과거와 결별하는 동안 기존의 경쟁자와는 과감하게 손을 잡았다. 1등이 아니면 죽는다던 빌 게이츠와 스티브 발머 시대엔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지만 나델라에게 중요한 건 생존과 성장이었다. 2등인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2015년 애플 iOS와 구글 안드로이드에 각각 최적화한 오피스를 내놓는 등 굴욕으로 비춰질 수도 있는 선택도 마다하지 않았다.

빌드2019에서도 나델라는 인터넷 웹 브라우저 ‘에지’(옛 익스플로러)를 애플의 맥OS와 연동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인공지능 서비스 코티나는 아마존의 알렉사와 같이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가하면 링크드인, 스카이브, 깃허브 등 전략적인 인수합병(M&A)를 통해 수익원 다각화에도 힘썼다. 그 덕에 최근 페이스북을 비롯한 IT기업들이 반독점 규제와 관련한 불확실성에 시달리는 것과 달리 MS는 평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달라진 건 이뿐만이 아니었다. 블룸버그비즈니스위크는 폐쇄적이고 답답하다는 평가를 받던 MS조직 문화가 나델라 취임 이후 수평적이고 창의적으로 거듭났다고 평가했다.

스마트폰 이후의 시대를 준비하는 MS = MS는 지난 18일(현지시간) 2019 회계연도 4분기(4월~6월)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2% 증가한 337억 달러라고 밝혔다. 시장 전망치(328억 달러)를 뛰어 넘는 역대 분기 최고 기록이다.

경제전문매체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왕의 귀환 - MS가 왕관을 되찾다’란 제목의 주간 팟캐스트 방송을 내보내기도 했다. 나델라의 성공 스토리는 바로 지금 이 순간까지도 진행되고 있다. MS는 다음 분기에도 두 자릿수 매출 증가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나델라는 “우리는 더 깊은 파트너십과 더 많은 약속을 해왔다”며 앞으로도 그 길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델라의 머릿속은 스마트폰 이후를 보고 있다. 구글과 애플이 주도하는 스마트폰 생태계는 MS에겐 큰 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나델라는 MS의 미래 먹을거리로 AI를 점찍었다. MS가 보유한 AI관련 특허는 697건으로, 구글(636건)과 인텔(267건) 등을 제치고 가장 많다.

나델라는 여기서 더 나아가 혼합현실(MR·Mixed Rearity)도 눈여겨보고 있다. MR은 현실정보를 기반으로 증강현실과 가상현실을 섞어 사용자 경험을 극대화하는 기술이다. 이를 위해 MR하드웨어 홀로렌즈를 2016년 내놓은데 이어 올해 홀로렌즈2를 선보였다. 가격이 3500달러로 여전히 높아 개인 판매보다는 산업용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미군에 10만개(5억 달러 규모)를 공급하기로 해 산업용 시장에서의 성공 가능성을 기대하게 한다.

나델라가 빌드2019에서 ‘오픈’을 강조한 것 역시 MR시장 발전을 위해 오픈 스토어, 오픈 브라우저 같은 개발형 플랫폼을 중요하게 여겨온 것과 같은 맥락에서 해석된다.

김우영 기자]/kw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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