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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 고민은 사치, 생존이 우선”…재계 일제히 수세경영 돌입
주요 그룹 “미래먹거리 발굴보다 위기극복에 역량 집중”
삼성·SK 등 총수 나서 비상경영체제로
경쟁력 저하 우려

[헤럴드경제=천예선·이세진 기자] 본격적인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공격적인 투자로 사업 영역을 확장해가던 국내 주요 기업들이 일제히 ‘수세경영’ 태세에 돌입했다. 미중 무역분쟁이 본격화하고 일본의 수출 규제로 인한 생산 타격이 예상되는 등 국내외 경영 환경이 전례없는 위기에 빠진 탓이다.

불확실성이 극대화된 경영 환경 속에서 ‘안전 제일주의’를 선택, 당장의 생존이 중요한 만큼 기존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며 사활을 걸겠다는 전략으로 보여진다.

주요 그룹들이 일제히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하는 등 이같은 분위기는 점차 확산되고 있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기업들이 최근까지 4차 산업혁명 등 미래 먹거리 발굴에 매진해왔지만 미중·한일 무역분쟁 등 현안이 엄중해지면서 당장의 위기극복에 역량을 집중하는 상황”이라며 “한정된 경영자원에서 공격경영은 당분간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대내외 불확실성이 고조돼 시장 수요가 낮아지면 투자를 지연시키게 되고, 수익도 줄어들어 투자여력도 떨어지게 된다”며 성장동력 저하를 우려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이 지난 6일 충남 온양과 천안 사업장을 잇따라 방문해 사업현황을 점검하고 일본의 경제보복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삼성전자 제공]

삼성은 연일 비상경영을 가동 중이다.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반도체 2030 비전(메모리·비메모리 2030년 세계 1위 달성)’을 발표하고 4차 산업혁명 주도권을 쥐기 위한 글로벌 인공지능(AI)센터 구축 및 인재영입 등 미래 대비를 활발히 진행해왔지만 지난달 일본의 수출규제가 본격화하면서부터는 총수부터 실무진까지 위기 대응에 매진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6일 충남 아산과 천안 사업장을 시작으로 전국 현장경영에 돌입했다. 이 부회장이 첫 행선지로 택한 아산과 천안 사업장은 반도체 제조공정 중 끝단인 후(後)공정 라인이 있는 곳이다. 반도체 제조공정의 시작부터 끝까지 전 과정을 직접 세심하게 챙겨보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해석된다.

이 부회장은 이 자리에서 일본 경제 보복 대응 방안 보고를 받고 ‘시스템 반도체 비전 2030’을 달성하기 위한 차세대 패키지 개발 방향 등을 논의했다.

삼성전자의 비상경영은 지난 6월부터 시작됐다. 반도체 다운턴(하강국면)과 실적악화, 미중 무역분쟁, 이재용 부회장 대법원 판결,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고강도 수사 등으로 대내외 악재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탓이다. 지난달 일본 수출규제까지 덮친 이후부터는 전(全) 제품에 컨틴전시 플랜(비상경영 계획)을 세우고, 재고 확보와 일본외(外) 소재 테스트, 공급선 다변화 등 직면한 위기타개에 총력을 쏟고 있다.

이처럼 대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내년도 투자계획에도 신중해진 모습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2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내년도 투자계획은 아직 완료되지 않았다”며 “대외 불확실성과 시장 변동성이 커 투자 검토 빈도를 기존보다 증가시키면서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LG전자 역시 일본의 경제보복과 관련해 일본과 국내 협력사에 안전 재고 확보를 요청하는 등 피해 최소화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환율변동성과 관련해서는 “결제 통화가 모두 한쪽 방향으로 움직이지만 않는다면 환율 변화에 따른 우려는 크지 않다”면서도 “환율 변동으로 인한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글로벌 생산기지를 구축하고 외화자산·외화부채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태원 SK회장이 지난 6월 경기도 이천시 SKMS연구소에서 열린 2019확대경영회의에서 발표 내용을 듣고 있다. [SK그룹 제공]

SK그룹도 지난 5일 최태원 회장이 주재하는 비상경영회의를 실시하면서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최 회장은 16개 주요 관계사 CEO를 소집해 그룹 최고협의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 회의를 가졌다. 통상 전문경영인 중심으로 진행되는 회의에 최 회장이 참석한 것과 관련해 그룹 측은 “엄중한 상황에서 최 회장이 직접 상황을 살피고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 구성된 회의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날 회의에서 최 회장은 일본 수출규제 조치에 따른 예상 시나리오를 점검하고 대응책과 준비 상황을 점검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의에 참석한 CEO들은 일본 수출규제에 따른 타격과 대응책을 분석하는 한편, 위기 극복을 비롯해 새로운 사업 기회 창출에도 힘써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SK하이닉스는 일본 수출규제 장기화에 대비해 사태수습 및 중장기 계획 수립을 위한 태스크포스(TF)팀을 운영 중이다. 아울러 국산을 포함한 소재 테스트도 지속적으로 해나간다는 방침이다. SK이노베이션은 미중 무역전쟁 심화로 화학 사업 시황에 실질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어 예의주시하고 관련 경영 전략을 재정비 중이다.

GS와 한화그룹 등도 화학 또는 금융 사업 등에서 미중 분쟁과 환율 변동성 확대가 미칠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은 지난달 임원 모임에서 “일본 수출규제가 장기화할 우려가 큰 만큼 대비가 필요하다”며 “지금처럼 불확실성이 높아질수록 정확한 예측 노력과 철저한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고 당부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국면에서 기업의 경쟁력 저하를 우려하고 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국제통상)는 한일 갈등과 관련해 “4차 산업혁명은 승자독식 구조로, 경쟁이 치열해 한일 난타전으로 시간을 허비할 여유가 없다”면서 “기업 입장에서는 이미 타격을 받은 후 보상·보전책은 ‘사후약방문’에 불과해 정부가 냉정한 판단으로 진정 국면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상호 한국경제연구원 산업혁신팀장은 “주식과 금융시장 등 경제 전방위적인 타격으로 번질 수 있어 크게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기업들은 단기적으로 생산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부품 소재 조달에 힘써야 하고, 보다 근본적으로는 철저한 시장 모니터링을 통해 위기 대응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jin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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