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만든 물질 일본이 처리 원칙
후쿠시마 땅에 묻거나 저장토록 해야
우리정부 국제공론화 논리 근거 빈약
자칫 처리 부가비용 부담 자초할 수도
한국선박 日서 싣고오는 ‘평형수’
후쿠시마 바닷물 들여오는 셈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출을 유력하게 검토하면서, 한국 정부가 정부가 국제원자력기구(IAEA) 총회에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처리 문제를 공론화하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정작 국내 원자력 학계는 이 문제에 침묵하고 있다. 관련 학술 세미나도, 토론회도 열리지 않는다. 국민의 먹거리와 직결되는 중차대한 사안인데도 교수들이 말을 아끼는 이유가 뭘까.
지난 17일 서균렬(사진)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과 교수를 서울대학교 32동 공과대학 연구실에서 만났다. 서 교수는 “국내 전문가들로 구성된 전문위원회를 만들어 오염수 데이터 분석, 시뮬레이션 예측, 경로 이동 시나리오 등을 면밀하게 마련해야 한다”며 “아울러 국제사회는 일본 정부가 오염수 해양 방출이 아닌, 후쿠시마 땅에 오염수를 묻거나 저장공간에 두는 선택을 하도록 압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몇 안되는 학자다.
―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 대해서 국내 원자력계 학자들이 유독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비보도를 전제로 사견을 말하는 교수가 너무 많다.
“교수들이 모인 자리에서 한번은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는 절대 안 된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런데 돌아오는 말은 ‘사기꾼’이었다. 한국 원자력 학계는 굉장히 폐쇄적이다. 네 편 아니면 내 편이라는 식이다. 원자력 안전에 관한 논의가 갖가지 이념 논쟁의 장으로 변질돼버린 영향도 크다.”
― 한국 대표단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정기 총회에서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에 대한 국제공조를 요청했다. 국제사회가 이에 응할 거라고 보나.
“각국이 미온적으로 국제공조에 동참하는 모양새가 될 가능성이 높다.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한국은 원전 오염수 문제에 손 놓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8년 만에 여론전에 나섰다. 그것도 각국 장관과 원자력 전문가가 오는 국제기구에서 문미옥 과학기술정보통신부 1차관이 말했다. 다른 나라 입장에서 보면 “한국이 왜 저러지?”라고 생각할 거다. 그리곤 이 문제가 자국에 어떤 이익이 되는지 계산기를 두들겨 볼 거다.”
― 오염수 방류는 한 국가의 ‘이익’ 문제가 아닌 ‘안전’ 문제가 아닌가.
“그걸 입증하기 위한 우리의 준비가 정말 미흡했다는 게 문제다.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출에 따른 국내 환경 영향성 평가 예측 시뮬레이션 결과조차 없다. 오염수 방출에 따른 국내 해양 생태계 영향성을 분석한 국내 논문도 미비하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이 문제에 대해서 전문가들을 소집해 위원회를 꾸린 적도 없다. 정부는 ‘원전 오염수는 위험하다’라는 상식에만 기대 이 문제를 국제사회에 어필하고 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이를 입증할 만한 과학적인 근거가 너무 빈약하다. 국제사회를 움직이려면 심증만으로는 안 된다. “대한민국 식탁 걱정은 한국 너네가 잘 해봐”라고 하지 않겠나.”
― “원자력은 100% 안전하지 않다”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일본 정부는 국제사회의 신뢰를 쌓기 위해 그간 칼을 갈았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방사능 수치가 뚝뚝 떨어지는 오염수 데이터를 IAEA에 꾸준히 보고했다. 후쿠시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어필해온 거다. 일본의 IAEA 기여금도 상당하다. 도쿄에서 200㎞ 이상 떨어진 후쿠시마는 지금도 오염수가 넘쳐나고 있다. 올림픽 수영장 1000개 분량이다. 그런데도 어떻게 도쿄올림픽이 성사됐을까. IAEA는 사실상 ‘문제가 없다’는 일본의 손을 들어줬다고 봐야 한다.”
― 전문가로서 객관적으로 평가할 때, 오염수가 해양에 방출되면 이는 얼마나 문제가 되나.
“방사성 물질은 원천적으로 해결할 방법이 없다. 쉽게 말해 세월이 약이다. 후쿠시마 오염수에 포함된 방사성 세슘만 해도 반감기가 약 30년이다. 반감기의 10배가 돼야 진짜 안전하다고 볼 수 있다. 300년이 걸린다는 말이다. 그런데 오염수에는 세슘뿐만 아니라 삼중수소, 스트로튬, 프로토늄이 포함돼 있다. 특히 세슘은 물에 녹으니까 물고기가 섭취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바다에는 울타리가 없다. 방사능에 노출된 물고기가 우리 식탁 위에 올라올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오염수 방류는 절대 안 된다. 이건 그냥 안 되는 거다. 그렇다면 왜 이걸 막무가내로 방류하겠다고 하는지 일본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 어쩌면 일본 정부는 한국이 오염수 문제를 공론화하길 기다렸겠다는 의심이 든다.
“그렇다. 이대로 가다간 자칫 국제공조라는 번지르르한 명분만 만들고 한국 정부가 비용을 부담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 우리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처리 비용으로 쓰일 수 있다는 말이다. 오염수를 저장하는 등 여러 처리 비용이 워낙 막대하니까 이걸 일본 정부가 짊어지기 싫은 거다. 심지어 IAEA에 보고된 데이터상으로 보면 일부는 오염수가 잘 걸러지고 있는 것처럼 보여지기까지 한다. 그런데 한국은 이를 반박할 논문도 없다.”
― 한국이 현금을 원조하는 방식 말고는 IAEA를 움직이게 하기 어렵나.
“IAEA도 간단하다. 돈이 된다고 생각하면 공동연구 ‘고우’(Go) 할 거다. 예컨대 50여 명 정도 연구자들이 최소 2년간 후쿠시마 오염수를 검증할 비용을 한국이 원조해라, 그럼 우리도 측정 장비 등 현물 지원해 대응에 나서겠다는 식이다. 걱정이 되는 건 국내 전문가가 충분히 이 문제를 연구할 수 있는데 막대한 비용을 들여 해외 전문가들을 앉혀 놓고 그 결과에 따라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일본인 전문가가 포함될 수도 있다.”
― 그런데 일본 정부가 오염수를 몰래 바다로 흘러내보내면 사실 막을 방법이 없다. IAEA도 규제 권한이 없다. 오염수 해양 방출 외에 다른 선택지로 어떤 대안이 적절하다고 보나.
“일본 정부가 국제해상법을 악용하지 말고 후쿠시마 땅을 전부 국유화하면 된다.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다른 지역으로 이동시키고 오염수를 최소한 일본 땅 지하 1~10㎞ 지점에 버리면 된다. 일본이 만든 물질이니까 일본이 처리해야 한다. 국제사회도 그렇게 압박해나가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우리 스스로 힘을 갖춰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정부가 전문가 TF 구성해서 오염수 방출에 따른 시뮬레이션도 돌려보고 해야 한다. 측정 시기, 측정 기기 등에 따라 오차범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여러 시나리오를 비교해 분석해야 한다. 우리는 이런 자료들을 ‘방패’처럼 가지고 있어야 한다.”
― 한국 정부가 좀더 신경쓰고 준비해야 할 ‘방패’가 더 있다면.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게 있다. 한국 선박이 싣는 평형수 검사다. 수천, 수만대의 차를 싣고 한국 선박이 일본에 간다. 일본 땅에 차를 내려놓은 한국 선박은 중심을 잡아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평형수를 채워야 한다. 일본 바닷물이 여기로 들어온다는 말이다. 이건 후쿠시마 바닷물을 아무 여과 없이 동해로 가져오는 것과 같다.”
―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말은.
“안전하다고 말하는 건 쉽다. 당장 우리 눈앞에 부작용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방사성 물질에 노출돼 사망할 확률이 10만명 중 한 사람 확률로 나온다. 그런데 그 한명이 나일 수 있고 내 가족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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