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투입됐는데…논문 구독료 추가 지불해야
"비영리 목적으로 논문 공개해야"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2017년 한국 교수와 연구자 등이 국제학술지(SCI급)에 출판한 논문수는 6만4105편. 이 가운데 정부가 연구개발(R&D)비를 지원해 나온 국제학술지 논문은 전체 논문의 64%(3만9032편)다. 정부 부처가 지원하는 연구비만 19조3927억원으로 국민 세금이 논문 생산에 기여하는 몫은 이처럼 크다.
그런데 정부가 지원한 연구논문이라도 이를 보기 위해서는 상업 출판사에 구독료를 또 지불해야 한다. 한국 대학 교수나 연구자가 정부 지원금을 받아 국제학술지에 논문을 내면, 그 논문의 저작권은 정부나 연구자 개인에 있지 않고 디비피아(DBpia) 등 민간데이터베이스 업체에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인건비, 재료비, 장비설치비 등 연구비를 전액 지원한 논문도 마찬가지다.
국가 R&D 비용이 투입된 연구성과물인 학술논문은 특정 개인이나 공동체의 이익이 아닌 국가 전체의 이익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국내법에는 연구성과물의 소유나 공개에 대한 조항이 없다. 이렇다보니 학회는 게재된 논문을 민간데이터베이스 업체에 넘겨주고 저작권료를 받고, 업체는 논문 열람에 따른 서비스 이용료를 받는다. 국가의 연구성과물이 상업적인 용도로 활용돼 제3자가 이득을 취해도 어떠한 제재가 따르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 같은 국내 학술논문 생산 구조는 미국, 유럽, 일본 등과 크게 대비된다. 미국은 공공기금으로 만들어진 연구성과물을 자유롭게 이용하는 것을 ‘납세자의 권리’로 본다. 미국은 공중보건 및 복지에 관한 법에 따라 국립보건원 기금이 지원된 논문의 경우 최종 동료심사 원고를 국립의학 도서관에 제출한다. 논문은 공식 출판 이후 1년 내에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일본도 지난 2017년 이후 일본연구재단이 지원한 연구 결과물은 공개하는 오픈 액세스를 시행하고 있다.
독일의 논문 공개 권한은 가장 폭넓다. 독일은 지난 2013년 저작권법을 개정해 연구자와 출판사가 독점 계약을 맺어도 논문 최초 출판 후 1년이 지나면 비영리 목적으로 해당 논문을 공개하도록 했다.
아울러 당장 내년부터는 유럽연합(EU) 경쟁력위원회의 합의에 따라 유럽에서 발간되는 과학논문 가운데 공적자금이 조금이라도 투입된 논문은 즉시 공개될 예정이다.
차미경 이화여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는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 국가 R&D 사업의 성과물인 논문의 오픈 액세스를 추진하기 위한 국내 법적·제도적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라며 “연구성과물 DB를 국가 전산시스템에 연계하는 규정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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