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기록 은폐·삭제 시도 담겨
민주당 탄핵조사에도 힘 실려
26일(현지시간) 미국 하원 정보위원회에 공개된 내부고발장. [AP]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탄핵 위기에 빠뜨린 ‘우크라이나 의혹’의 계기가 된 내부고발자의 고발장이 26일(현지시간) 공개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더욱 궁지에 몰렸다.
고발장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민주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 관련 조사를 실시하도록 외압을 행사했으며 내년 미 대선에 외국을 개입시키려 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여기에 해당 통화 기록의 은폐 및 삭제를 시도하고, 권력을 남용했다는 제보까지 포함돼 탄핵 정국에서 ‘스모킹건(결정적 증거)’이 될지 주목된다. A4 용지 9쪽 분량의 고발장은 전날 기밀 해제된 뒤 일부 내용이 검은색으로 지워진 편집본 형태로 공개됐다. 상·하원 정보위원장에 보내는 서신 형태의 이 문건 날짜는 2019년 8월 12일로 돼 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내부고발자는 고발장에서 “공적 의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복수의 미 정부 당국자들로부터 미국의 대통령이 2020년 미 대선에서 외국의 개입을 요청하기 위해 그의 대통령직 권한을 사용하고 있다는 정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어 “이러한 개입에는 대통령의 주요 국내 정적 중 한 명에 대해 조사하도록 외국을 압박한 것이 포함된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인 루돌프 줄리아니가 이러한 노력의 핵심 인물이고, 윌리엄 바 법무장관 역시 관여된 것으로 보인다”고 ‘우크라 의혹’을 거론했다.
내부고발자는 “나는 이러한 행위들이 미국의 국가 안보에 위험을 제기하고, 미 대선에 대한 외국의 개입을 억지하고 맞서려는 미 정부의 노력을 약화시킨다는 점에 대해서도 우려한다”고 말했다. 특히 “7월 25일 미·우크라이나 정상 간 통화에 대해 직접 아는 복수의 정부 당국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2020년 재선 도전이라는 개인적 이익을 위해 통화를 이용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또 “통화가 있고 나서 며칠 후 백악관 고위 당국자들이 통화의 모든 기록, 특히 백악관 상황실에서 작성된 ‘정확히 말한 그대로’의 녹취록을 감추기 위해 개입했다는 것을 들었다”며 백악관의 조직적 은폐 의혹을 제기했다. 이어 “이러한 일련의 행위들은 백악관 당국자들이 통화 중에 일어난 일의 심각성을 이해하고 있었음을 강조한다”고 덧붙였다.
백악관 당국자들은 백악관 변호사들로부터 통화 관련 전자 녹취록을 통상적으로 저장되는 컴퓨터 시스템에서 삭제하라는 지시까지 받았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내부고발자는 통화 녹취록이 ‘극비 정보’로 분류되는 별도 시스템으로 이동됐다고 밝혔다. 백악관 당국자들은 녹취록이 국가 안보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 우려로 인해 극비 정보로 이동된 경우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내부고발자에게 전했다.
백악관이 전날 공개한 통화 녹취록은 ‘말한 그대로’의 기록이 아니라 음성인식 소프트웨어와 상황실에 있던 당국자들의 필기 및 기억, 전문가 청취 등을 합친 ‘개략적인 녹취록’이라고 미 언론들이 보도한 바 있다.
여기에 기록 은폐·삭제를 시도했다는 주장까지 나오면서 민주당이 개시한 탄핵 조사에 힘이 실릴 전망이다.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이날 고발장 일부를 인용하며 “이것은 은폐”라고 선언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내부고발자의 고발장이 탄핵 조사에 로드맵을 제시했다”고 평했다.
김현경 기자/pink@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