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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이스피싱A-Z③]“엄마 나 좀 살려줘” 숨소리까지 닮은 아들 목소리…어머니에게 돈은 중요치 않았다
자식 사랑 이용한 납치·위협성 보이스피싱 여전
최근엔 현금대신 추적 어려운 문화상품권 요구하기도
지난 6월 22일 피해자가 보이스피싱범에게 보낸 돈 영수증. 보이스피싱범은 현금을 찾아 편의점에 가서 문화상품권을 구매하고 영수증에 나오는 핀번호를 불러달라고 요구했다. [피해자 제공]

지난 6월 22일 피해자가 보이스피싱범에게 보낸 돈 영수증. 보이스피싱범은 현금을 찾아 편의점에 가서 문화상품권을 구매하고 영수증에 나오는 핀번호를 불러달라고 요구했다. [피해자 제공]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또 보이스피싱 기사냐?’라고 생각했는가? 보이스피싱 사건은 이제 더이상 새롭지가 않아 뉴스거리조차 안되는, 흔한 범죄가 돼버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 이순간도 누군가는 보이스피싱범에게 돈을 건네고 있다는 사실이다. 보이스피싱범이 옛날처럼 어눌한 말투로 국가기관을 사칭하며 돈을 뜯어내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당신의 성별, 이름, 나이, 직업 등을 알고 접근한다. 심지어 당신의 약점까지도 알고 있다. 본지는 주1회 진화하는 보이스피싱 수법을 A부터 Z까지 다루면서 속지 않는 방법을 소개한다. 부모님과 친구에게 널리널리 알려야 한다. 다시 강조하건데 방심하는 순간 당한다. 〈편집자주〉

[헤럴드경제=정세희 기자] 사랑하는 아들이 싸움에 휘말려 허벅지를 칼로 찔렸다는 소식을 들었다면? 전화로 울면서 ‘엄마 살려줘’라고 한다면?

평정심을 유지할 부모는 없다. 보이스피싱일 수도 있겠다는 의심이 자리 잡을 새도 없이 이성은 마비돼 버린다. 피해자 김유신(20·가명) 씨의 어머니도 그랬다. 지난 6월 22일 오전 10시 사건 발생직전, 김씨의 어머니는 가게 출근을 위해 화장을 하고 있었다. 막 집을 나서려고 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010으로 시작하는 번호였다.

“○○씨 어머니시죠?”

사투리를 쓰는 한 50대정도 되는 남성의 음색이었다. 통화 질이 좋지 않아서인지, 보이스피싱범이 일부러 이름을 흘려서 말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들의 이름이 정확하게 들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들이 알바하는 곳에서 전화가 온 줄 알고 아무런 의심없이 답했다.

“아니요. 유신이 엄만데요?”

본격적인 보이스피싱범의 연기가 펼쳐졌다. “아이고 드디어 어머니와 연락이 닿았네요. 다름이 아니라 유신이가 지금 많이 다쳤어요.” 어머니는 깜짝 놀라 물었다. “네? 어디가 얼마나? 왜요?”

보이스피싱범은 “아드님이 아들 친구랑 길을 가다가 우리에게 ‘깡패같다’고 욕하고 시비를 걸어 싸움이 났다”며 “우리가 지하로 끌고와서 손 좀 봤다. 허벅지를 칼로 찔렀느데 피가 많이 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들을 바꿔준다 했다. 어머니의 손은 바들바들 떨렸다.

“엄마, 나 다쳤어. 나 좀 살려줘”

분명히 아들 목소리였다. 아들의 울먹이는 목소리를 들으니 정신이 혼미해졌다. 올해 스무살이 된 아들은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집을 나선 상태였다. 평소 얌전한 아들이 누군가에게 욕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바깥에서 친구들과 놀다보면 충분히 시비가 붙을 수도 있을 법 했다. 무엇보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정확히 아들의 것이었다. 어머니는 “애들이 어려서 뭘 잘 모르고 그런 것이니 이해해달라”고 사정을 했다.

보이스피싱범은 본색을 드러냈다. 같이 다쳤다는 아들 친구의 이름을 대면서 그 어머니랑은 이미 합의를 했다며 돈 250만원을 요구했다. 적당한 장소를 알려주면 그쪽으로 이동을 할테니 현금을 가지고 나오라고 했다. 차 종류와 번호를 알려주며 해당 차가 보이면 창문을 통해 현금과 아들이 갈아입을 옷을 전달하라고 지시했다. 아들이 충격으로 의식을 잃어 바지에 소변을 했다는 것이었다. ‘얼마나 놀랐으면…. 조금만 기다리면 엄마가 구해줄게’ 그는 즉시 현금을 찾으러 집밖으로 뛰쳐나갔다.

▶자식 협박형 보이스피싱의 진화…추적 어려운 문화상품권 요구=현금을 요구하던 보이스피싱범은 어머니가 돈을 찾았다고 하니 갑자기 편의점에서 돈을 문화상품권으로 바꾸라고 지시했다. 편의점에서 문화상품권을 사고 영수증을 사면 영수증에 핀(PIN) 번호가 찍히는데 이를 불러달라고 했다. 문화상품권이라고 하면 종이로 발행되는 것만 알고 있던 어머니는 의아했다. 마음 한켠에서는 ‘뭔가 이상한데’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핀 번호를 자꾸 틀리게 불렀다.

의심스러운 마음에 보이스피싱범에게 “아들의 얼굴이라도 보여달라”고 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돌아오는 건 더 큰 협박이었다. 그는 아들의 다리를 부러뜨리겠다, 목을 따버리겠다는 등 무서운 소리를 해댔다. 전화를 끊고 아들에게 전화를 하고 싶었지만 보이스피싱범은 전화를 절대 끊지 못하게 했다. 만에 하나라도 아들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 어머니는 차라리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 낫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편의점에서 수십만원의 문화상품권을 사서 핀번호를 하나하나 부르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었다. 편의점에서는 문화상품권 수백만원어치를 한번에 팔지 않았다. 어머니는 집근처 편의점 6~7군데를 돌면서 한군데서 50~70만원어치를 구매했다. 그리고 영수증 5만원 권당 한장씩 발행되는 영수증에 적힌 핀번호를 보이스피싱범에게 수도없이 불렀다.그렇게 몇시간동안 편의점을 돌고 문화상품권 핀 넘버를 부르고 나니 3~4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손에는 땀에 젖은 문화상품권 영수증 70장이 넘었다.

▶만에 하나라는 생각에 전화 끊지 못하는 어머니의 마음 쥐락펴락= 이후로도 보이스피싱범은 추가로 100만원을 뜯어냈고 나중에는 아들을 데려다 주는 수고비로 50만원을 더 달라고 했다. 어머니는 누군가에게 알려야 할 것만 같았다. 근처 아는 언니네로 갔다. 어머니는 보이스피싱범이 들리도록 크게 “언니 나 돈 좀 빌려줘”라고 말하면서 한손으로는 메모지에 ‘협박을 당하고 있다’고 적어 보여줬다.

언니는 바로 보이스피싱같다고 했다. 하지만 곧바로 보이스피싱 전화를 끊을 수가 없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이 자꾸만 어머니를 주저하게 했다. 그 사이 휴대폰 배터리는 3%로 떨어졌다. 보이스피싱범은 “폰의 전원을 끄지 말고 충전시켜 놓은 상태에서 현금을 찾아오라”고 지시했다. 어머니가 수고비 50만원을 찾으러 다시 바깥으로 나간 사이 상황은 끝나 있었다. 아는 언니가 폰을 끊은 것이다.

그때에도 어머니는 아들걱정뿐이었다. ‘혹시라도 아들에게 해코지 하면 어찌할까.’ 어머니는 파출소를 찾았다. “보이스피싱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들이 안전한지 확인 좀 해주세요.” 발을 동동 굴렸다. 경찰이 위치추적을 했더니 아들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무사해서 다행이라는 생각밖에 안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바보같았지만 다시 그 상황에 처한다면 어머니는 또 똑같이 행동할지도 모른다. 일단 자식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녀 협박형 보이스피싱이 끊이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아무리 보이스피싱을 조심해야 한다고 알려도, 막상 자식이 위험에 빠졌다고 하고 비슷한 목소리까지 들려주면 부모들은 0.001%라도 위험한 상황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기꺼이 ‘보이스피싱의 덫’에 몸을 던진다. 그래서 나중에 보이스피싱이었다는 것을 확인하고도, 자식이 마치 위험에 처했다가 살아난 것처럼 “살아있어 고맙다”고 말한다. 특히 최근엔 보이스피싱범의 기술이 진화해 해킹 등을 통해 음성정보를 모아 목소리도 똑같이 조작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부모의 공포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현재 해당 사건은 서울 마포경찰서에서 수사중이다. 경찰이 문화상품권 핀번호를 조회한 결과 중국에서 게임머니로 바꿔 이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최근엔 이같은 문화상품권 핀번호를 이용한 보이스피싱이 늘고 있다. 보이스피싱을 위한 계좌번호나 카드가 필요 없는데다 추적이 더 어렵기 때문이다. 경찰은 자녀 협박성 전화를 받으면 일단 전화를 끊고 경찰에 신고하라고 강조한다. 경찰 관계자는 “보이스피싱범이 자식이 전화를 받지 못하도록 작업을 해놓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전화를 끊고 자녀에게 전화를 한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더 말려들게 된다”며 “일단은 무조건 전화를 끊고 경찰에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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