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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회에, 취객에…사라진 을지로 사과들
서울시 을지로에 54그루 사과나무 시범 조성
밤사이 사과 뭉텅이씩 사라져, 시민의식도 실종
‘따지 말고 눈으로만 감상하세요’란 안내문 무색
시, 월동상태 살핀 뒤 내년 주요도로로 확대 계획
지난달 말 을지로 사과나무 수분에 사과가 열려있는 모습(왼쪽)과 이달 초 사과가 다 사라지고 없는 모습. [한지숙 기자]

[헤럴드경제=한지숙 기자] “자연 낙과 상태로 두려고 했는데, 그냥 한숨만 나옵니다.”

서울 을지로 사과나무 거리를 담당하는 서울시 조경과 공무원의 유선을 타고 전해져 오는 목소리에 힘이 빠져있다. 지금 쯤 붉은 빛이 도는 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려있어야 할 을지로 사무나무 거리에 사과가 단 한 알도 남아있지 않아서다. 기자가 지난 4일 시청서 을지로입구까지 걸어보니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사과알이 십수개 달려있던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채 초라해보였다. ‘만지거나 따지 마시고 눈으로만 감상하세요’라고 적힌 안내문만 무색하게 걸려있다.

서울시는 지난달 18일 유동인구가 많은 을지로(시청~을지로4가 1.6㎞ 구간)의 가로변, 교통섬 등에 사과나무를 수분(樹盆) 형태로 54그루 설치했다. 전남 장성군에서 재배한 사과나무 8~9년생 짜리를 을지로 곳곳에 보기좋게 배치했다. 모두 2500만원을 들였다. 유실수를 서울의 최도심에서도 볼 수 있게 하자는 취지에서였다. 하지만 스무여날만에 사과는 볼 수 없게 됐다.

11일 서울시에 따르면 현재 사과는 중구청 잔디광장 안 2그루에서만 볼 수 있을 뿐 가로변에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서울시 관계자는 “구청 안 사과는 보는 눈이 많아서 감히 따가지 못하는데, 가로변이나 교통섬에 둔 것들은 시민들이 모두 따간 것 같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시민들에게 사과가 빨갛게 익어 자연 낙과되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는데, 사과가 익기도 전에 다 따가버렸다”며 아쉬워했다.

도둑은 시민 또는 관광객으로 추정된다. 낮 동안에는 변화가 없던 사과 갯수는 다음날 아침이면 뭉텅이씩 줄어 있었다. 술취한 시민이 객기를 부렸거나, 사과를 처음 본 관광객이 기념용으로 슬쩍 챙겼을 수도 있다. 시 관계자는 “관상용 사과목을 납품하는 사람들 말로는, 동남아인들이 본국에서 재배하지 않는 사과를 신기하게 여겨 따가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시가 을지로에 사과나무를 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4월에는 종로구청과 함께 율곡로 흥인지문 성곽공원 부근(가로녹지대 150m)에 2년생 153그루를 심었다. 충남 예산군이 묘목을 기증한 율곡로 사과나무는 올해는 열매를 맺지 않았다.

을지로 입구 교차로 부근에 놓인 사과나무들. 사과는 누군가 다 따가 버리고 가지만 앙상하게 남아있다. [한지숙 기자]

처음 을지로에 사과나무 거리 조성사업을 검토할 때 시도 관리의 어려움을 어느 정도는 예상했다. 앞서 2014년에 종로4가에 사과나무 75그루를 심을 당시에도 시민들의 조급함에 사과가 제대로 익을 새 없이 모두 따가버린 전례가 있어서다. 몇년이 지났어도 시민 의식이 달라지지 않은 셈이다.

서울 도심 가로변 사과나무 조성 사업은 2014년 시장이 종로구 현장시장실을 운영할 당시 한 시민이 옛 가요 ‘서울’의 노랫말 처럼 ‘종로에 사과나무를 심어보자’라고 제안한 것에서 시작됐다. 이후 박원순 시장이 검토해 보라 지시했다.

시는 올해 시범 조성한 을지로 사과나무가 동해를 입는 지 내년 봄에 잎을 틔우는 지 등 월동 상태를 살피기 위해 화분을 치우지 않고 현 위치에 그대로 두기로 했다. 이후 내년에는 다른 주요 도로로 확대 설치할 계획이다.

시에 따르면 이 밖에 서울에서 볼 수 있는 유실수 가로수로는 성북구 돌곶이로 22길에 감나무 90그루, 마포구 광성로에 감나무 50그루, 양천구 목동동·서로(양천공원 가로녹지) 감나무 36그루, 강동구 천중로(신명초교~길동생태공원) 모과나무 55그루 등이 있다.

은행나무는 10만9784그루로 전체 가로수의 35.8%를 차지한다. 이 가운데 은행 열매를 맺는 암나무가 2만8698그루다. 암나무는 열매의 악취로 인한 민원이 많아 수나무나 다른 수종으로 교체돼 2017년 3만452그루, 지난해 2만9731그루 등으로 매해 줄고 있다. 재건축 등 도시정비사업이 더해져 전체 은행나무 수와 비중도 2017년 11만2303그루(36.7%), 2018년 11만1791그루(36.4%) 등 조금씩 줄고 있다.

시와 자치구는 은행, 감 등 채취한 가로수 열매는 서울보건환경연구원에 중금속 검출 등 검사를 의뢰해 안전성을 확인한 뒤 경로당이나 사회복지시설에 무상 기증하고 있다.

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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