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포동고분군 1차 발굴조사 내용과 연구 성과 수록
[헤럴드경제(부산)=윤정희 기자] 부산시 시립박물관(송의정 관장)은 2017년에서 실시한 노포동고분군(시기념물 제42호) 일원 1차 발굴조사의 내용과 성과를 수록한 ‘부산노포동유적 Ⅲ’ 부산박물관 학술연구총서 제60집을 발간했다고 11일 밝혔다.
노포동유적은 부산을 남북으로 관통하여 흐르는 수영강-온천천 수계의 최북단에 해당하는 유적이다. 수영강 수계는 청동기시대부터 부산 문화를 형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으며 수영강-온천천을 중심으로 다수의 삼한~삼국시대의 유적이 분포하고 있다. 또한, 이는 지리적으로 부산에서 양산-울산-경주로 연결되는 선사·고대 문화네트워크 형성의 첫 관문이라 할 수 있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현재까지 발굴 조사된 노포동유적은 노포동고분군을 중심으로 그 주변의 노포나들목(IC)유적, 노포동공영차고지(91-6번지)유적, 두구동유적 등이 있다. 이들 유적에서는 기원전 후부터 삼한시대 사람들이 조성한 주거·창고·고상식(高床式) 건물 등 대규모의 생활 시설과 함께 시신과 당시 사용한 물건을 함께 매장한 대규모 무덤군이 확인됐다. 이번 학술연구총서에서는 노포동유적의 학술적·역사적 성격을 규명하기 위해 생활(취락) 유적과 무덤(분묘) 유적으로 구분하여 종합적인 연구 성과를 수록했다.
먼저 생활 유적은 노포동유적에서 가장 북쪽에 해당하며, 해발 40m 내외의 독립 구릉에 위치해 조망권이 탁월한 입지에 해당한다. 이러한 입지는 당시 3세기 이후 집단 간의 세력 경쟁이 활발했던 사회상에 비추어보면 방어적 성격이 강한 유적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대형급의 주거지는 다른 중소형 주거지에 비해 비교적 평탄한 정상부에 위치하고, 유일하게 부뚜막으로 추정되는 시설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신분에 따른 입지적・구조적 차이가 존재했을 것으로 보인다.
노포동유적에서 조사된 무덤 구조는 크게 목관묘(널무덤)와 목곽묘(덧널무덤)로 구분된다. 먼저 목관묘는 시신만을 안치할 수 있는 좁은 형태의 관 안에 평상시 휴대하던 물품이나 사후의 안녕을 위한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것들을함께 묻은 것으로 오늘날의 무덤과 비슷한 형태이다.
학계에 따르면 영남지역에서는 기원전 300년에서 기원후 150년 정도까지 목관묘 구조로 무덤을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에서 확인된 목관묘 유적은 노포동유적을 비롯해 동래 온천동유적·복천동유적·정관 방곡리유적 등이 있다. 이들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을 비교했을 때 노포동유적은 부산에서 가장 이른 시기인 기원전 100년경에 조성한 목관묘(노포나들목 유적) 유적임을 확인했다. 따라서 부산지역 가야의 모체가 되는 변진독로국의 출현과 형성과정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연구 자료로 평가할 수 있다.
기원후 150년 이후부터는 당시 삼한 사회가 발전을 거듭하면서 중국에서 영향을 받은 목곽묘 구조로 바뀌게 된다. 목곽묘의 특징은 이전 작은 규모의 목관묘에 비해 규모가 거대해지고 토기와 철기유물의 부장 수량이 많아진다는 점이다. 노포동유적 목곽묘에 출토된 토기는 그 종류가 다양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형태적으로 뚜렷하게 변하는 특징이 있어 고고학계의 토기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길이 4.5m 이상의 큰 규모의 무덤에 당시 지위가 높은 사람이 착용하는 둥근고리자루큰칼(환두대도)을 포함하여 창과 화살촉 등 철제무기류가 많이 출토됐다. 따라서 노포동유적에서 확인된 목곽묘는 당시 노포동과 그 주변을 아우르는 집단의 지배계층 무덤으로 추정된다.
부산시 시립박물관 관계자는 “노포동유적은 고대국가의 발생과 전개 과정을 밝혀주는 중요한 유적으로 부산지역의 가야 초기의 집단의 모습과 성격을 밝혀주는 실마리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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