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면 내년 구조조정의 칼날이 항공업계를 덮치지 않을까 하는 위기감이 만연하다.”
저비용항공사의 몸부림이 거세지고 있다. 일본 불매 운동의 여파로 탑승률 성장이 둔화한 가운데 고유가와 고환율 악재까지 덮친 탓이다.
여기에 신규 항공사의 진입은 생존마저 위협하는 최대 난제로 꼽힌다. 시장 파이는 갈수록 줄어드는데 경쟁자만 늘어나는 셈이다. 이미 시장은 운임 경쟁과 탑승률 저하로 항공기를 띄울수록 마이너스인 구조로 변하고 있다.
출혈 경쟁의 시작은 일본 불매 운동이었다. 역대 최저수준으로 떨어진 일본 항공권 가격에도 소비자들은 결국 눈을 돌렸다. 경기 둔화로 지갑을 닫은 수요가 공급을 밑도는 현상은 3분기에도 이어졌다.
여객 실적은 계속 마이너스다. 9월 기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여객 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1.0%, 2.6% 감소한 사이 저비용항공사는 4.9% 줄었다. 10년 만에 처음으로 나타난 역성장이다.
저비용항공사 중에선 국토부 제재가 여전한 진에어가 가장 큰 폭(-26.0%)으로 여객 수가 감소했다. 지난 2월 몽골과 싱가포르 신규 운수권 배분과 5월 중국 노선 운수권 추가 배분 등에서 배제된데 이어 업황 악화라는 직격탄을 맞았다.
에어부산(-23.4%)과 에어서울(-14.5%)의 여객 수도 눈에 띄게 감소했다. 지난달 비상경영을 선포한 이후 대대적인 브랜드 리뉴얼을 준비 중인 이스타항공의 여객 수는 13.9% 줄었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중화권과 동남아 노선을 확장한 저비용항공사의 수익성이 크게 개선되지 않는 상황에서 신규 저비용항공사 3사의 진입이 연내 순차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공급 과잉과 경쟁 심화는 불 보듯 뻔하다. 국적사가 11개로 늘면 한국은 인구 1000만명 이하의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 대만에 이어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항공사를 보유한 국가가 될 전망이다. 단위 인구 및 단위 면적 대비 과도한 항공 업계의 출혈 경쟁이 불가피하다.
이는 출국 수요의 지속적인 성장이 시장을 지탱하던 과거와는 다른 상황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공급만 불어나는 상황에서 경쟁자의 증가는 실적 부진만 야기할 수밖에 없다.
과당경쟁으로 인한 시장 재편 사례는 해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유럽이 대표적이다. 유럽의 항공사 수는 2014년 196개에서 2018년 223개로 늘어난 후 1년도 되지 않은 기간에 25개가 사라졌다. 수요가 공급을 따라가지 못한 영향이 컸다.
국내의 출국 수요가 하향 안정화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유럽 항공시장의 재편이 주는 의미는 크다.
실제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내국인 출국자 수는 2012년 이후 6년간 연평균 13%의 고성장을 기록했지만, 올해 8월 기준 전년 대비 3.7% 감소한 243만여명에 그쳤다. 누계 기준으로는 3.9% 성장에 그친 2000만명에 머물렀다.
이런 상황에서 저비용항공사의 여객 수요는 10년 만에 역성장했다. 9월부터 일본 노선 축소가 본격화했으나 여전히 공급이 수요보다 많다. 중화권과 동남아 여행지의 선호도가 계속 이어진다는 보장도 없다.
실적 악화는 예견된 결과다. 2분기 1000억원 규모의 적자를 낸 저비용항공사들의 영업손실은 3·4분기에 커질 것으로 관측된다. 이스타항공의 순환 무급 휴직에 이어 다른 저비용항공사의 비상경영 돌입 가능성이 언급되는 이유다.
마땅한 돌파구가 없다는 것이 고민이다. 노선 포트폴리오를 강화하기엔 단거리 노선에 집중된 구조적 한계가 여실하고, 조인트벤처(JV)와 해외 진출도 저비용항공사의 수익 구조상 쉽지 않다.
업계는 업황 악화에도 항공사들의 몸집 불리기 경쟁이 가중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전 세계적으로 운항 중지에 들어갔던 보잉사의 B737-맥스 기종의 운항이 재개될 경우 올해 도입이 지연된 항공기가 일시 도입돼 공급 부담이 가중될 수 있어서다. 이는 곧 계약 이행 의무에 따른 족쇄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저비용항공사의 한 관계자는 “올해 성수기 이후 수요 둔화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신규 항공사의 진입과 기존 항공사의 기단 확대는 시장 재편을 앞당기는 촉매가 될 것”이라며 “동남아 노선 확대로 인한 특가 프로모션에 이어 신규 항공사의 진입에 따른 운임 경쟁이 계속되면 서로 지는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and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