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사람에게 가진 편견 깨고자 시작”
경기 파주경찰서 아프리카계 자율방범대 대원들 모습. 왼쪽 위부터 조셉 말로케(카메룬) 아이젝(가나), 테오도르(카메룬), 안준수 경장(파주경찰서 외사계), 엘라이자(가나), 최준용 경위(광탄파출소), 스티븐(가나), 마리아(카메룬), 린다(가나), 사무엘 오봉(가나), 빅토리아(가나), 조셉(가나) 펠릭스(가나), 캘빈 아무와(가나), 프리스카(카나), 구미 프랑크(가나), 남기원 경감(파주경찰서 외사계장) [사진=파주경찰서 제공] |
[헤럴드경제=박상현 기자] “편의점 앞 좌판에서 술 먹고 있으면 위험해 보이는데 저렇게 활동하면서 조용히 시켜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아요”
지난 21일 오후 8시 30분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의 한 편의점 앞. 술을 마시며 큰 소리로 대화하던 아프리카계 남성 4명이 외국인 자율방범대 ‘네이버후드 와치(NEIGHBORHOOD WATCH)’라고 쓰여진 형광 녹색 조끼를 보자 조용해졌다.
조끼를 입고 경광봉을 든 15명의 아프리카계 주민 방범대원들은 한 달에 한 번 광탄면과 법원읍 지역 일대를 순찰하는 ‘외국인 자율방범대’ 활동을 한다. 헤럴드경제는 이날 경찰의 협조를 받아 외국인 자율방범 활동에 동행했다.
지난 21일 오후 7시 30분 경기 파주시 광탄면 광탄 파출소로 근처 지역에 거주하는 아프리카계 주민들이 속속 도착했다. 아프리카계 주민들은 저마다 금목걸이, 금시계, 금팔찌, 야구점퍼, 빵모자 등을 착용하는 등 개성이 뚜렷했다. 이 날 금색 호랑이 얼굴 장식이 박힌 검정 벨벳 소재 구두를 신고 온 자율방범대 부대장 말로케 조셉(40·카메룬)씨는 “낫 메이드 코리아(Not made Korea)’라며 연신 자신의 새 구두를 자랑하며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다. 아프리카계 외국인 자율방범대를 창설한 대장 격인 구미 프랑크(55·가나)씨는 손동작으로 경례를 하며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오후 8시가 되자 이날 활동에 참여할 ‘자율방범대’ 팀인 아프리카계 지역 주민 15명이 모두 모였다. 출발 직전 파주경찰서 외사계 소속 안준수 경장이 상자에 담긴 형광 조끼와 경광봉을 방범대원들에게 나눠 주었다. 방범 물품을 받자 조금 전까지 환하게 웃으며 대화를 나누던 대원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방범 물품을 받은 대원들은 곧 광탄 파출소 앞에 이열종대로 줄을 맞춰 서기 시작했다. 형광 녹색 조끼를 입고 경광봉 작동 여부를 점검하던 아프리카계 주민 사무엘 오봉(50·가나)씨는 “일반 외국인이 언제 경찰이랑 같이 순찰을 돌아보겠어요? 우리가 정말 나쁜 사람들이었다면 경찰이랑 같이 순찰을 돌 수도 없겠죠” 라며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순찰은 광탄 파출소에서 출발해 광탄 시장, 광탄 하천변, 우체국 사거리, 상점가를 거쳐 다시 광탄 파출소로 돌아오는 경로로 진행됐다. 순찰을 도는 거리에 위치한 대부분의 가게들이 문을 닫았다. 고층 건물과 가로등 없이 전선이 얼키설키 얽힌 거리는 어둡고 스산했다. 순찰 후 10분을 지나 광탄 시장에 도착하자 “고생 많아요”라며 인사를 건네는 시민이 보였다. 광탄국제도시에 거주하는 시민 허일(36)씨는 “여기 주변에 외국인 분들이 정말 많은데 저렇게 활동도 많이 하면 주변 사람들도 호응도 가질 거고 든든하죠”라고 말했다. 인사를 받은 방범대원들도 인사를 건넨 뒤 방범 활동을 이어 갔다.
2019년 10월 18일 경기 파주시 광탄읍과 법원읍 근처에 거주하는 아프리카계 흑인 15명이 파주경찰서 외사계 소속 경찰관들과 함께 외국인 자율방범대 활동을 하며 광탄읍 주변을 순찰하고 있다. [사진=박상현 기자] |
순찰 후 15분을 지나자 조명 하나 없이 어두컴컴한 하천변이 나타났다. 방범 대원들은 익숙한 듯 하천변을 걸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조명 하나 없는 광탄 하천변은 방범대원들의 경광봉이 유일한 조명이 되기도 했다. 이 날 순찰에 함께한 최연소 방범대원 알렉스(15개월)는 어두컴컴한 하천변이 무서운 듯 자신을 안은 아버지 캘빈 아무와(48·가나)의 품을 더 파고들었다. 알렉스의 어머니 마리아(30)씨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연신 알렉스의 등을 토닥였다. 캘빈 씨 가족은 이날 부부동반으로 아이와 함께 방범 활동에 참여했다.
4살 조카 여자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 가던 유희연(23)씨는 “여기가 술 취한 사람도 많고 어두워가지고 밤에 혼자 다니면 무서운데 이렇게 경광봉이랑 조끼를 입고 다니시면 덜 무섭고 든든하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엔 뭐하는 거지라고 생각했는데 경찰분들이랑 같이 다니는 걸 보고 아프리카계 지역 주민 위주로 방범을 하는 거구나 알 수 있었다”고 했다. 순찰 30분 후 상점가와 이어지는 우체국 사거리에 다다르자 박수를 치며 응원하는 시민도 나타났다. 분수리의 사업체에 근무하는 김철환(49)씨는 “이 동네가 원래 아프리카에서 오신 분들이 많다”며 “고생도 많고 타지에 나와서 방범 활동을 한다는 게 너무 고마워서 박수를 쳤다”고 말했다.
이 날 약 1시간 가량을 동행한 아프리카계 주민 자율방범대원들은 모두 한국인이 아프리카계 사람들에게 갖는 ‘편견’을 극복하고자 이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하는 엠마뉴엘 이젤(35·가나)씨는 “버스 같은 걸 타면 우리 아프리카계 사람 옆에 잘 안 앉는 사람도 있다. 자리가 있어도 말이다”라며 “그런 구식화된 스테레오 타입을 극복하고자 이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조셉 씨도 “한국 사람과 아프리카 사람 간의 고정관념이나 편견 등을 깨고 싶어 참여하게 됐다”고 했다.
프랑크 씨도 “처음 이 조직을 만든 이유는 우리가 경찰과 같이 순찰을 하면 외부 사람들이 봤을 때 우리를 더 좋게 봐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라며 “외부인에게 아프리카 사람들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심어주고 싶어 하게 됐다”고 했다. 이어 “데드라인은 없다. 계속 이 활동에 참여하고 싶다”고 했다. 무역업을 하는 캘빈 씨는 “TV에도 너무 못 사는 아프리카 사람만 나오는 것 같다”며 “식당 같은 곳을 가도 아프리카 사람이 있으면 사람들이 쳐다본다. 신기해서 쳐다보는 건지, 어떤 시각을 가지고 한국 사람들이 쳐다보는 건지 궁금하다”고 했다.
이 날 친구를 따라 방범활동에 첫 참여를 하게 된 대학생 제프리 크리스틴(35)씨는 “같이 순찰하며 한국 사람들과 인사하고 악수도 하는 게 너무 좋았다”며 “아프리카 친구들과 하나가 되어서 순찰을 하는 게 한국 지역 사회로 더 밀접하게 섞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했다. 이어 “한국이 왜 치안이 좋은지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남기원 파주경찰서 외사계장은 “경기북부 파주 지역에 아프리카 사람들이 많이 산다”며 “올해 초 서장님이 취임하면서 지역 간담회를 했는데 그 쪽에서 자주 들린 얘기가 아프리카계 사람들이 많이 보여 일반인이 보기엔 무섭다는 얘기”라고 했다. 이어 “경찰 업무가 치안 담당이니 실제 거주하는 아프리카계 주민들과 함께 지역 순찰을 한다면 거리감이나 위화감 등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시작했다”며 “방범대원들이 사법권이 없어 이렇게 현직 경찰관들이 동행하지만, 가시적인 효과만으로도 체감안전도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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