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월이다. 원경환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서울 동부지검에 무고죄로 고소장을 접수했다. ‘함바’ 브로커 유상봉씨가 ‘원경환에게 돈을 줬다’는 취지의 진정서를 검찰에 제출했기 때문이다. 원 청장은 “사건의 실체가 신속하게 가려져야 한다”고 보도 다음날 바로 고소장을 접수했다. 대신 그는 자신의 고소건을 경찰이 아닌 검찰에 제출했다. 이유는 경찰 2인자가 경찰에 고소장을 접수할 경우 ‘내 사건을 내 부하에게 수사를 시키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려운 말로 ‘이해충돌’ 쯤 된다.
이번달 17일이다. 금태섭 의원은 대검찰청 국정감사장에서 자신의 초임검사 시절 얘기를 꺼냈다. 사법연수원생 한명이 서울동부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했는데 모든 검사 선배들이 나서서 사법연수원생의 고소를 취소시켰다고 했다. ‘검사는 고소를 하는 것이 아니다’는 얘기를 선배들이 했고, 사법연수원생 역시 선배들의 논리를 납득했다고 말했다. 금 의원의 설명에 다수 국감 현장 관계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2009년이다.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광우병 위험보도’ 방송분을 만들어 방송한 PD수첩 제작진을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수사의뢰서를 제출했다. 기자가 기억하는 범위 내에서 국가를 대표하는 장관급 인사가 언론사를 상대로 낸 첫 수사 의뢰였다. 당시엔 ‘국가가 명예훼손 고소, 수사의뢰의 주체가 될 수 있느냐’, ‘훼손 될 명예가 국가를 대표하는 장관에게 있느냐’가 쟁점이었다. 정운천 장관은 장관직에서 사퇴한 이후 개인자격으로 PD수첩팀을 고소했다. 지난 2011년 대법원은 광우병 논란과 관련한 고소 사건에 대해 ‘PD수첩 무죄’를 확정 선고했다.
이제 2019년이다. 검찰총장이 한 언론사의 ‘악의적 보도’에 대해 검찰에 고소장을 접수했다. 과거와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고소 주체인 그는 ‘이해충돌’을 우려해 검찰이 아닌 다른 수사기관에 수사를 맡기지도 않았고, 현직 검사 가운데 나이도 가장 많고 직책도 가장 높은 그에게는 ‘검사는 고소를 하는 것이 아니다’는 조언을 해줄 선배 검사도 없으며, 국가 기관에 준하는 그에게 훼손될 명예가 있느냐 여부에 대한 논란도 존재치 않는다. 검찰총장이 직접 고소를 했다는 사상 초유의 사태는 ‘조국 반대’와 ‘조국 수호’의 논쟁 속에 묻혔고, 이제는 다시 정경심 교수에 대한 영장 발부 여부에 귀추가 주목되는 10월의 어느 즈음이다.
국감장에서 본 그는 화가 많이 나 있었다. 중진 의원의 말을 끊고 ‘특정인을 보호하시는 듯한 얘기를 자꾸 하시냐’고 했고, 소 취하가 바람직하다는 지적에 대해선 ‘사과를 받아야겠다’고 받아쳤다. 총장이 매우 화가났다는 사실은 전국에 생중계됐다. 그가 문제삼은 기사는 언론 시장에선 이미 사장됐다. 후속 보도 대부분은 ‘건설업자와 총장은 무관하다’는 보도가 압도적 다수다. 싸움은 총장의 완승으로 기울었는데 여전히 그는 ‘사과를 하라’며 자신의 부하(서부지검)에 자신이 맡긴 고소 사건을 수사토록 지시해둔 상태다. ‘검사가 수사권 가지고 보복하면 그게 깡패지, 검사입니까’ (2016년 12월 윤석열) h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