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게 부숴진 사람 뼈 4.3kg 발굴
100m 초대형 ‘연접식 적석총’ 확인
금귀걸이·토기 등 유물 5000점 출토
석촌동 고분군 매장의례부에서 화장 뒤 잘게 부서진 사람뼈가 발견됐다. [서울시 제공] |
한성백제(기원전 18∼기원후 475) 왕실묘역인 서울 석촌동 고분군(사적 제243호)에서 화장(火葬) 후 분골과정을 거친 사람 뼈와 다량의 토기, 장신구, 기와 등 유물이 쏟아졌다.
화장 인골이 백제 고분에서 다량 발견된 건 이번이 처음으로, 백제 한성기 왕실의 장례문화를 유추할 수 있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된다.
석촌동 고분군을 조사하는 서울시 산하 한성백제박물관은 또 모두 100m에 이르는 초대형 ‘연접식 적석총’ 형태도 처음으로 확인했다고 23일 밝혔다.
적석총은 돌을 쌓아 만든 무덤 중 거대한 규모를 가진 것이다. 연결된 형태의 고분은 지금까지 학계에 보고된 적이 없는 새로운 형태로, 그동안 적석총을 개별 단위 무덤으로만 파악해 온 통념을 깨는 것이어서 고고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끈다. 연접식 적석총 부근에선 금귀걸이, 유리구슬, 중국제 청자 같은 소유자의 권위와 위엄을 드러내는 위세품과 토기, 기와 등 유물 5000여점이 출토됐다.
한성백제박물관은 이 날 오전 10시 학계연구자, 시민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석촌동 고분군 발굴조사 현장설명회’를 열고, 석촌동 고분군 발굴조사 중간결과를 이같이 발표했다.
석촌동 고분군(송파구 가락로 7길 21)은 한 변의 길이가 50m에 달하는 대형 적석총인 3호분 등 적석총 5기, 흙무덤 1기 등 총 6기가 복원, 정비돼 있다. 3호분은 근초고왕릉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2015년 10월부터 석촌동 1호분 북쪽지구에서 연차별 발굴조사를 하고 있는 한성백제박물관은 이번에 1호분 주변에 이르는 총 5290㎡ 구간을 조사했다.
이번에 처음 확인된 ‘연접식 적석총’은 네모꼴의 중소단위 적석묘(16기)와 이를 이어주는 연접부, 화장된 인골을 묻은 매장의례부 3곳을 모두 빈틈없이 맞붙여 가며 무덤 규모를 100m까지 늘린 특이한 형태다.
이 연접식 적석총은 특히 1987년 마지막 복원?정비 당시 2개의 ‘쌍분’(남분?북분) 형태로 복원됐던 1호분과도 이어져 있다. 이제까지 단독분으로 알려진 1호분이 연접식 적석총의 일부분일 수 있는 가능성이 제기된다.
3곳의 매장의례부(시신을 매장하고 상장례와 관련한 의례가 치러진 시설)에선 잘게 부숴진 사람 뼈가 각각 발굴됐다. 토기, 장신구, 기와 등도 함께 나왔다. 이들은 모두 화장되어 분골 과정을 거친 것으로, 제사 유물과 함께 고운 점토로 덮인 채 발견됐다.
수습한 인골 무게는 모두 4.3kg으로 파악됐다. 일반적으로 사람을 화장하면 2~3kg 유골이 나오는 점을 고려하면 여러 사람 뼈로 볼 수 있다. 같은 부위의 뼈가 2개 발견되기도 했다.
한성백제박물관은 무덤의 거대한 규모 뿐 아니라 출토된 유물 양상을 볼 때 석촌동 고분군이 초기 백제 왕실묘역이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실마리가 제공됐다고 평가했다.
이번 연접식 적석총의 발견으로 향후 발굴조사에 따라 1987년부터 복원?정비한 석촌동 고분군에 대한 관점과 조사?연구, 경관관리도 달라질 것으로 박물관 측은 전망했다. 현재 복원?정비되어 있는 6기(적석총 5기, 흙무덤 1기) 외에 주변에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고분이 묻혀있을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1917년도에 제작된 고분분포도에 따르면 석촌동, 가락동(현 송파동), 방이동 일대는 총 300여 기의 대형 고분이 남은 거대 고분군으로 파악된다. 일제강점기 때만 해도 90기 이상이 남았던 것으로 조사됐으나 한국전쟁과 무분별한 도시개발로 대부분 무덤이 사라졌다. 1974년 잠실 일대 개발 전 일대 유적 유무를 확인하는 지표조사와 유적발굴조사가 진행되면서 백제 왕릉급 고분군으로 인식됐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공주 송산리 고분군이나 부여 능산리 고분군과 같은 왕실묘역인 점을 감안할 때 석촌동·가락동 일대에는 아직도 지하에 무덤 일부가 남아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시는 설명했다.
한지숙 기자/jsha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