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변호사 “당시 사법관행 바로잡는 계기 됐으면…”
김칠준 법무법인 다산 대표 변호사. [연합뉴스] |
[헤럴드경제=김성우 기자]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의 변호를 맡은 김칠준(58) 법무법인 다산 대표변호사가 “이번 재심이 사법관행을 바로잡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당시 가혹행위가 있던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8차 사건 문제를 ‘개별 경찰관들의 폭력 수사’ 문제로 국한해 볼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재심변호사’로 이름을 알린 박준영(44) 변호사와 함께, 8차 사건 범인으로 지목됐던 윤모 씨에 대한 재심사건 변호를 맡게 됐다. 김 변호사는 이전에도 2·7차, 4·5차 화성연쇄살인사건 피의자 변론을 맡은 경험이 있다.
김 변호사는 22일 헤럴드경제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번 재심사건에서는 윤 씨에게 자행된 경찰관들의 불법 행위와 재심의 승패가 어떻게 나올지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는 것 같다”면서 “경찰이 어떤 불법행위를 저질렀는지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다뤄볼 것”이라고 말했다.
단, “화성연쇄살인 사건 수사와 관련된 가혹행위는 개인의 일탈 문제로만 볼만한 주제가 이니다”라면서 “당시의 사법 관행이나, 사법 시스템을 분석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당시 경찰의 수사에서 자백은 일반화돼 있었고, 고문이 빈번하게 있었다”면서 “화성연쇄살인사건은 압박이 컸고, 가혹한 수사들이 일반화되는 경향이 더욱 컸다”고 설명했다.
화성연쇄살인 사건 수사 당시 경찰의 수사대상자는 2만1000여명, 이중 3000여명은 경찰에 직접 연행됐다. 이 과정에서 용의자와 피의자들을 대상으로 한 가혹행위가 다수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경찰이 9차사건의 용의자로 지목했던 윤모(당시 19세) 군은 “자신이 피해자를 살해했다”고 밝혔지만, 이어진 현장검증에서 “모든 자백은 경찰이 시켜서 했다”며 범행을 끝내 부인했다. 이후 경찰이 윤군에게 진술을 강요하고, 폭행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1990년 12월 18일 화성 9차 사건의 용의자로 조사받은 차모(당시 38세) 씨는 화성 병점역 부근 열차 건널목에서 기차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차 씨는 경찰 조사를 받고 나온 후, 정신분열 증세를 보여오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어 1991년 4월 17일에는 화성 10차 사건과 관련한 수사대상자인 장모(당시 33세) 씨는 오산의 아파트 옥상에서 몸을 던졌다. 그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사망했다.
화성 4차사건 이후, 경찰의 수사대상이었던 김모(당시 45세) 씨는 1997년 수원 자택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1993년 5월부터 3개월 간 경찰의 수사를 받았던 김 씨는 무혐의로 풀려난 뒤인 같은 해 8월 결백을 주장하며 자살을 기도했다. 그는 당시에는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지만, 이후에도 매일 술에 의지해 살아왔다.
경찰이 기소의견으로 송치한 피의자들 상당수는 검찰 수사와 법원을 거치며 무혐의·무죄 판결을 받았다. 1987년께 검찰에 연쇄강간과 살인 혐의로 기소의견으로 송치됐던 홍모(당시 44세) 씨와 문모(당시 22세) 씨는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됐다. 1988년 구속기소됐던 전모(당시 33세) 씨는 대법원에서 “(수사결과가) 고문에 의해 조작된 것으로 보이며, 뚜렷한 증거가 없다”며 무죄판결을 받았다.
현재 김 변호사와 변호인단은 윤 씨와 지속적으로 만남을 가지며 재심 사건을 준비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윤 씨와 2차례에 걸쳐 만남을 가졌다”면서 “재심 재판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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