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혼인 중에 태어난 자식은 아버지와 유전자가 다른 것으로 확인되더라도 친자식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23일 판결에 민유숙 대법관이 유일하게 반대의견을 냈다.
친자관계인지를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도록 과학기술이 발달한 점을 고려했어야 한다는 게 민 대법관이 낸 반대의견의 골자다.
민 대법관은 이날 판결문에서 “과학적 친자 감정이 가능하게 되는 등의 상황 변화로 기존 판례는 친생자 추정 원칙의 예외를 인정하는 합리적 판단 기준으로 기능하기 어려워졌다”며 “기존 판례가 판단기준으로 삼는 ‘명백한 외관상 사정’의 의미를 현재의 상황에 맞춰 확대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유전자 확인 기술로 친자식이 아니라고 확인된 경우까지도 민법상 ‘친생자 추정 원칙’이 적용된다고 제한하면 ‘가족관계 유지’라는 입법 목적에만 치우쳐 ‘진실한 친자관계 확인’이라는 개인의 기본권은 전혀 고려하지 않게 된다는 설명이다.
민 대법관의 이런 견해는 ‘친생자 추정 원칙’이 혼인 중에 아내가 출산한 자식이 남편의 친자식이 맞는지를 명확하게 확인할 수 없었던 시기에 제정된 규정이라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친자식 여부를 제대로 확인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일단 친자식으로 인정하고, ‘혈액형이 다르다’는 등 친자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면 2년 이내에 ‘친생 부인(否認)의 소’(친자식 추정을 번복하는 소송)를 통해서만 이를 번복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비교적 짧은 기간인 2년 이내에만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돼 있어서 시기를 놓친 아버지는 친자관계가 아니라는 사실이 명백하더라도 더는 친자관계를 부인할 수 없는 불합리한 결과가 발생했다.
이에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983년 7월 ‘부부 일방이 해외에 있거나 사실상의 이혼으로 별거하는 등 부부가 동거하지 않았다는 사실 등 명백한 외관상 사정이 존재한 경우에만 친생자 추정이 깨질 수 있다’며 ‘친생자 추정 원칙의 예외사유’를 처음으로 판시했다.
이 경우에는 애초에 친자식으로 추정되지 않기 때문에 소송 제기 기간이 짧은 ‘친생 부인의 소’가 아닌 ‘친자관계부존재 확인소송’을 언제든지 제기해 친자관계를 부인할 수 있도록 했다.
이후 유전자 확인 기술 등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하면서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예외사유의 판단기준으로 제시한 ‘친생자 추정이 깨질 수 있는 명백한 외관상 사정’에 대한 개념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들이 제기됐다.
부부가 동거하지 않았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유전자가 달라 도저히 친자식으로 인정할 수 없는 경우도 ‘명백한 외관상 사정’에 포함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이 같은 반대의견에도 불구하고 기존 판례를 유지해 “혼인 중에 낳은 자식은 유전자가 다르다고 확인된 경우에도 친자식으로 추정된다”고 판단한 것은 ‘진실한 친자관계 확인’보다 ‘법적 안정성’을 더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가정의 평화 보호와 자녀의 안정된 지위 보장’이라는 친생자 추정 원칙의 도입 취지를 고려해 예외사유를 최대한 좁게 인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민유숙 대법관.[연합] |
대법원 관계자는 “오랜 기간 유지된 가족관계에 대한 신뢰보호 필요성과 혼인과 가족생활에 대한 자율적 결정권 보장, 사생활 보호의 필요성 등을 감안해 유전자 등 혈연관계만을 기준으로 친생자 추정 원칙의 적용 범위를 정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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