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발언→당정 논의…교육이 정치에 종속 병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정시 비율 상향을 언급하면서 교육계가 혼란에 빠졌다. 사진은 문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 모습. [연합] |
[헤럴드경제=박세환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대학입시 정시 비중 확대 말 한마디가 교육계를 뒤흔들고 있다. 교육계의 해묵은 ‘정·수시 논쟁’이 다시 점화되면서 입시를 준비하는 학부모와 학생들은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교육철학이 부실한 가운데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대입제도 개편이 좌지우지되면서 교육이 정치에 종속되는 고질적인 병폐가 다시 일어나고 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24일 교육부 등에 따르면 지난달 1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외순방을 떠나기 전 “대입제도 전면 재검토” 발언으로 정부와 여당은 대학 13곳의 학생부종합전형(학종) 실태조사를 벌이는 한편 ‘교육 공정성 강화 특별 위원회’를 만들어 11월 중순쯤 ‘대입제도 개편안’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당시 대통령 발언을 놓고 정·수시 비율 조정 가능성이 제기됐으나 교육부와 여당은 “대입제도 개선방향은 학종 공정성 개선”이라고 못박았다.
또 문 대통령이 지난달 9일 장관 임명장 수여식에서 “고교 서열화 해소”를 언급하며 교육분야 개혁을 강조하자 당·정은 즉각 자율형사립고·특수목적고(외국어고·국제고)를 2025년 일반고로 ‘일관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지난 22일 국회 시정연설해서 “정시 비중 상향”을 언급하자 “정·수시 비율 조정은 장기적 과제”라던 교육부가 “학종 비율의 쏠림이 심각한 대학들, 특히 서울 소재 일부 대학에 대해서 정시 비율이 확대될 수 있도록 협의해 왔다”고 말을 바꿨다.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는 교육이 대통령 말 한마디에 휘둘리면서 교육현장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중2·고1 학부모 정현미(43·서울 아현동) 씨는 “정부가 대입정책을 놓고 이랬다 저랬다 해서 뭐가 뭔지 모르겠다”며 “그러지 않아도 대입 전형이 다양해 머리가 복잡한데 전형 비율 마저 바뀐다고 하니 혼란스럽다”고 했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는 정권 초기부터 대입제도와 관련 오락가락하는 갈지(之)자 행보를 이어왔다. 문 정부 초기인 지난 2017년 8월 수능 과목 절대평가 전환 등을 골자로 하는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개편안’을 내놨다가 수능 영향력 약화 비판 여론에 밀려 3주만에 돌연 개편을 1년 미뤘다.
지난해 8월엔 공론화 과정까지 거치며 대학들에 정시 비율을 30% 이상으로 늘릴 것을 권고하는 내용의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안’을 내놨다. 사실상 수능의 영향력이 커질 수밖에 없는 방향인데, 이에 맞춰 내신과 수능 절대평가가 선행돼야 할 대선공약인 ‘고교학점제’를 기존 2022년에서 2025년으로 도입 시점을 늦춰 교육현장의 혼란을 야기시켰다.
이에 대해 교육계에선 “문재인 정부의 교육철학 부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결과”라고 지적한다. 김성천 한국교원대 교육정책전문대학원 교수는 “정시 약화를 골자로 한 대선 공약(고교학점제)과 상극관계인 정책(정시 확대)을 발표함으로써 문재인 정부가 교육에 대한 이해도가 얼마나 떨어지는지 명백하게 보여줬다”며 “큰 방향성 없이 여론에만 휘둘리다 보니 정책들끼리의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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