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종합기술원 중심 연구 박차
해외 관련스타트업 공격적 투자
시장 선도 구글·IBM과 경쟁나서
지난 8월 이재용 부회장이 충남 아산 삼성디스플레이 사업장을 찾아 차세대 디스플레이 제품을 살펴보고 있는 모습. |
구글 양자컴퓨터와 선다 피차이 구글 CEO. |
IBM 양자컴퓨터의 모습. |
삼성전자가 미래 핵심기술로 지목되는 양자컴퓨터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10년 이상 미래를 보고 선행연구를 하는 ‘종합기술원’을 중심으로 양자컴퓨터 연구개발을 강화하고 해외 스타트업에 수백억원을 투자하는 등 공격 행보에 나서고 있다. “기존 틀과 한계를 허물고 미래를 선점하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초격차 철학이 양자컴퓨터 투자에도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양자컴퓨터는 ‘100억분의 1m’에 불과한 원자 단위 이하의 양자 역학을 응용해 기존 컴퓨터보다 연산속도가 수백만배 이상 빠른 차세대 컴퓨터를 말한다.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등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넘쳐나는 빅데이터를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어 미래 IT산업을 뒤흔들 ‘게임체인저’로 평가된다.
특히 구글이 지난달 “현존하는 슈퍼컴퓨터로 1만년 걸리는 수학 문제를 3분20초(200초) 만에 푸는 양자컴퓨터를 개발했다”고 밝히면서 양자컴퓨터 상용화에 대한 기대감이 한층 높아지고 있다.
▶삼성내 기술개발 활성화 ·美스타트업 통큰 투자=2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양자컴퓨터가 뜨거운 화두로 부상하자 종합기술원을 중심으로 양자컴퓨팅 기술 연구를 활성화하고 나섰다.
삼성에 정통한 IT업계 관계자는 “삼성 내부에 극소수로 구성된 양자컴퓨터 개발팀이 이제 연구를 시작한 단계”라며 “현재는 리서치 초기 단계지만 향후 시장 개화를 예의주시하면서 기회가 오면 지체없이 사업화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양자컴퓨터 관심은 해외 스타트업 투자에서 두드러진다. 국내 관련 기술과 인재가 부족한 점을 감안해 양자컴퓨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전(全) 분야에서 과감한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삼성카탈리스트펀드는 지난달 22일 아랍에미리트 무바달라캐피탈과 함께 미국 메릴린드주(州)에 위치한 양자컴퓨터 하드웨어 스타트업 아이온큐(IonQ)에 5500만달러(644억원)를 투자했다.
앞서 지난달 2일에는 삼성넥스트가 하버드대 양자정보과학연구소 출신 연구원들이 주축이 돼 창업한 소프트웨어 전문 ‘알리로(Aliro)’에 270만달러(32억원)를 투자했다. 뿐만 아니라 삼성전자는 지난달 6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삼성 최고경영자(CEO) 서밋’에서 현지 IT 전문가 700명을 상대로 양자컴퓨터를 주제로 한 강연을 펼쳤다. 삼성전자가 지분투자한 아이온큐의 공동창업자인 김정상 듀크대 교수가 발표자로 나섰다. 김 교수는 지난 10년간 미국 정부가 지원하는 양자 컴퓨팅 개발 프로젝트 수석 연구 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구글·IBM 선도…삼성 “기술패권 양보없다”=삼성전자의 양자컴퓨터 투자는 공교롭게도 구글이 지난달 23일 양자컴퓨터 개발을 발표한 시점과 겹쳐진다.
구글은 “현존하는 최고 성능 슈퍼컴퓨터로 1만년 걸릴 계산을 자사의 54 큐비트 양자컴퓨터 ‘시커모어’가 200초만에 해냈다”며 “계산 성능은 슈퍼컴퓨터의 약 15억배로 ‘양자우위’에 도달했다”고 설명했다.
구글과 치열한 기술 경쟁을 펼치고 있는 IBM도 상업용 클라우드에 양자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IBM은 구글의 양자우위에 대해 “과장됐다”며 진위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처럼 글로벌 IT 공룡들이 양자컴퓨터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연산속도를 기반으로 IT는 물론, 금융, 의료, 물류, 제약, 자동차, 항공우주 등 전 산업계에 대격변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손영권 삼성전자 최고전략책임자(CSO) 사장은 “양자컴퓨터 기술은 현재 초기 단계지만 트랜지스터, 레이저, 휴대폰처럼 삶의 일상을 확 바꾼 혁신기술과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며 “신약, AI, 획기적인 신재료 등 분야에서 혁신을 불러올 열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구글과 IBM 등에 비해 양자컴퓨터 개발 후발주자이긴 하지만, 하드웨어 최강자인만큼 주도권 확보는 시간문제라는 전망도 나온다.
심재윤 포항공대 교수 겸 확장형 양자컴퓨터 기술융합 플랫폼 센터장은 “자금력과 하드웨어 최적화에 강점이 있는 삼성에게 양자컴퓨터는 충분히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분야”라며 “삼성전자의 내부 결정과 의지가 있다면 공격적인 인재영입으로 따라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천예선 기자/cheo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