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진 흔들림없는 육성 의지
‘신약주권’ 장기투자의 결과물
최태원〈사진〉 SK그룹 회장이 27년간 뚝심으로 밀어붙여 온 ‘바이오 드림’이 영글고 있다. SK바이오팜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뇌전증 치료용 혁신 신약 엑스코프리(세노바메이트정)가 미국 FDA(식품의약국) 시판 허가를 받았다. SK그룹의 바이오·제약 사업이 질적으로 한 단계 도약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산업 발전의 길목마다 정유사업과 통신, 반도체 등 신산업에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해 그룹 전반의 이익의 원천으로 삼아 온 SK그룹이 바이오 사업으로 다시 한 번 일대 전환기를 맞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21일(현지시간) 미국 FDA는 SK㈜ 자회사 SK바이오팜이 독자적으로 개발·임상시험한 뇌전증 치료제 엑스코프리에 대한 시판 허가 결정을 내렸다. SK바이오팜은 2001년 기초 연구를 시작한지 18년 만에 후보물질 발굴부터 임상개발, 신약허가까지 전 과정을 독자적으로 수행한 국내 최초의 제약사가 됐다.
신약개발은 통상 10년~15년의 기간, 수천억원 이상의 비용이 투입되고도 5000~1만개의 후보물질 중 단 1~2개만 신약으로 개발될 만큼 성공 확률이 적고, 사업화를 확신할 수 없는 과정이다. 이 때문에 연구 전문성과 함께 경영진의 흔들림 없는 육성 의지가 바탕이 돼야만 실현 가능한 영역으로 꼽힌다.
이번에 시판 허가된 엑스코프리 역시 최 회장의 뚝심과 투자 철학이 없었다면 성공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평가다.
앞서 최 회장은 2016년 경기 판교에 위치한 SK바이오팜 생명과학연구원을 찾아 “글로벌 신약개발 사업은 시작할 때부터 여러 난관을 예상했기 때문에 장기적인 안목에서 꾸준히 투자해왔다”며 “혁신적인 신약 개발의 꿈을 이루자”고 구성원들을 격려하는 등 지속적인 드라이브를 걸어 왔다.
SK는 1993년 대덕연구원에 연구팀을 꾸리면서 불모지였던 제약사업에 발을 들였다. 인구 고령화 등으로 바이오·제약 사업은 고부가 고성장이 예상되는 영역인데다, 글로벌 시장에 자체개발 신약 하나 없던 한국에서는 ‘신약주권’을 향한 도전으로 평가됐다. 특히 국내 제약사 대부분이 실패 확률이 낮은 복제약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SK바이오팜은 혁신신약개발에만 몰두해 성공 여부에 관심이 모아졌다.
최 회장은 지난 2002년, 오는 2030년 이후 바이오 사업을 그룹의 중심축 중으로 세운다는 장기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신약 개발에서 의약품 생산, 마케팅까지 모든 밸류체인을 통합해 독자적인 사업 역량을 갖춘 글로벌 바이오·제약 기업을 키워낸다는 비전이었다.
최 회장은 신약 개발 뿐 아니라 의약품 생산 사업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최 회장은 2015년 SK바이오팜의 원료 의약품 생산 사업부를 물적분할해 SK바이오텍을 설립했다. SK바이오텍은 2017년 글로벌 메이저 제약사인 BMS(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의 아일랜드 생산시설을 통째로 인수했다. 이어 2018년에는 SK㈜가 미국의 위탁 개발·생산 업체인 앰팩(AMPAC) 지분 100%를 인수하는 등 잇따른 글로벌 M&A로 제약 사업 경쟁력을 키웠다.
이어 지난 10월 SK㈜는 의약품 생산법인 세 곳을 통합해 SK팜테코를 설립했다. SK바이오텍과 SK바이오텍 아일랜드, 앰팩 등 여러 지역에 분산돼 있던 의약품 생산사업의 지배구조를 단순화해 시너지와 효율을 극대화한다는 포석이다.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이항수 PR팀장은 “SK의 신약개발 역사는 리스크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거듭해 혁신을 이뤄낸 대표적 사례”라며 “명실상부한 글로벌 제약사의 등장이 침체된 국내 제약사업에 큰 자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세진 기자/jin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