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CIS(독립국가연합)와 처음 인연이 닿은 것은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7년이었다. 당시 이름도 생소했던 동유럽의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힘이 빠지는 것은 한국을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는 점이다. 심지어 한국을 중국의 일부 지역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그로부터 21년이 지난 2018년, KOTRA 카자흐스탄 알마티 무역관으로 발령받았다. 당시 카자흐스탄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고려인이 최초 정착한 곳, 세계 9위의 영토, 드넓은 초원 정도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걱정은 곧 기대와 설렘으로 바뀌었다.
“한국인이세요?” 알마티의 호텔 리셉션에서 처음 들었던 말이다. 호텔 직원은 내 여권을 보고는 한국에서 유학을 했다며 유창한 한국어로 말을 걸어 왔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길거리에서 간간히 들리는 케이팝(K-pop), 슈퍼마켓에 진열된 한국 식료품들, 길거리에 보이는 한국 관광포스터, 화장품 로드샵 등 알마티 곳곳에 한국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카자흐스탄에서 한국의 위상은 꽤 높은 편이다. 그 동안 고려인들이 쌓아온 긍정적인 이미지와 한국의 경제발전사가 더해져 선진국이라는 인식이 자리잡았다. 한국의 언어와 문화, 나아가 비즈니스에도 관심을 갖는 청년이 증가하고 있다. 알마티에 위치한 한국어 교육원에 연간 2500명의 학생들이 등록하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카자흐스탄에서 한류는 단순 취미에서 벗어나 소비문화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젊은 소비자를 중심으로 화장품·생활소비재·식품 시장에서 한국 제품의 인기가 늘고 있다. 화장품은 최근 카자흐스탄 수출품목 톱10에 들 정도로 성장했다. 2018년 기준 2269만 달러를 수출했는데 이는 전년 동기 대비 91.1%나 증가한 수치다.
식품 시장에서도 한국 제품의 진출이 늘고 있다. 라면, 음료, 식재료 등을 중심으로 소비자의 관심이 증가 중이다. 케이푸드(K-food)도 인기를 누리며 전통 음식, 한국 길거리 음식 등을 테마로 창업하는 카자흐인이 생겨나고 있다.
최근에는 K-pop의 음악, 패션 스타일에서 모티브를 받은 Q-pop(Qazaq Pop, 큐팝) 장르가 탄생하는 등 대중문화에도 한류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 K-pop의 그룹형성방식, 홍보방식 등을 벤치마킹해 탄생한 아이돌 나인티원(Ninety One)이 대표적인 예다. 멤버 중 한 명은 한국의 연예기획사에서 연습생 생활을 한 적도 있을 정도다.
10년 전만 해도 아시아 문화라고는 중국·일본 문화밖에 없던 이곳에서 한류가 인기를 끌고 있다니 놀랍고도 자랑스럽지 않을 수 없다.
한류는 우리 기업의 수출확대에도 당연히 도움이 된다. 특히 브랜드파워가 부족한 중소기업에게는 큰 이점으로 작용한다. 한류를 접한 소비자들은 한국 제품에 대한 친숙감과 신뢰를 갖게 된다. 아직 카자흐스탄에서 한류의 영향은 소비재에 한정돼 있지만 이를 넘어 농업, 창업, 민관합작투자개발(PPP), 프랜차이즈 분야 등 다양한 산업에서도 빛을 발할 수 있다. 물론 우리 기업도 이에 따른 역량과 책임감을 가져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