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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칙 뒤바뀐 구속제도 ①] 한 번 들어가면 못 나온다…법원도, 변호사도 보석에 부담
영장심사 도입 이후 보석 신청 비율·석방 사례 급감
구속 이후 다른 사정 없는데 보석 허가 주저하는 법원
풀려난 의뢰인 법정구속되는 데 부담 느끼는 변호사 업계
헌법과 형법은 불구속 재판 원칙인데, 현실 제도 운영은 반대

서울 서초구 대법원 중앙홀 전경. 초대 대법원장인 가인 김병로 선생의 흉상이 서 있다. [대법원 제공]

[헤럴드경제=좌영길 기자] 중요 형사사건은 구속 심사 단계에서 사회적 관심이 절정에 달한다. 영장 발부 여부에 따라 정치적 진영의 희비가 엇갈리고, 결과에 불만인 쪽은 영장 전담 판사에 대한 인신 공격을 통해 불복 의사표시를 한다. 구속은 수사나 재판을 위한 수단일 뿐인데도, 사실상 예심처럼 여겨지고 너무 큰 의미가 부여된다. 한 번 구속되면 다시 나오기 어려운 관행이 정착되면서 ‘구속=처벌’이라는 인식이 자리잡았다.

대법원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구속영장이 청구된 피의자는 총 24만244명이었고, 그 중 10.4%인 2만4876명이 구속됐다. 영장심사 제도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구속된다는 문제의식에서 1997년 도입됐다. 피의자가 구속 필요성을 다투는 절차가 생기자 연간 14만명에 달하던 구속자 수는 크게 줄었다. 대신 법원이 보석이나 구속적부심을 통해 석방을 해주는 데 인색해졌다. ‘일단 쉽게 가두고, 나중에 풀어주던’ 형사절차가 ‘구속할 때 신중한 대신 다시 풀려나기 어려운’ 구조로 바뀐 셈이다.

실제 보석 비중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지난해 구속기소된 피고인 4만8605명 중 보석을 청구한 사람은 10.7%인 5191명에 불과했고, 이 중 34.1%인 1769명만이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았다. 10년 전인 2009년 16.4%였던 보석 청구율과 , 44.1%였던 허가율 모두 완만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수사 단계에서 구속됐더라도 재판 단계에서 검찰과 대등하게 다투기 위해서는 불구속 재판이 필요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헌법과 형사소송법도 불구속 재판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데도, 실제로는 거꾸로 운영된다. 한 전직 헌법재판관의 말이다. “불구속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것은 법원 잘못이 크다. 검찰이 잘못했네 안했네 해도 결국 최종 결정은 법원 책임이다. 검찰 보고 중립성을 지키라고 하는데, 프랑스에서도 검찰은 ‘왕의 칼’이라고 한다. 결국 정권을 잡은 사람이 움직이는 기관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그걸 막아줄 수 있는 게 법원이다. 구속은 자기를 신고한 사람을 해칠 위험이 있는 경우처럼 추가 범행 위험이 있을 때 최소한도로 해야 한다. 보석 비중도 더 올라가야 한다.”

구속심사가 도입된 이후 보석은 법원에 부담스러운 제도가 됐다. 부장판사 출신의 여운국(52·사법연수원 23기)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의 설명이다. “법 조문상으로는 원칙적으로 보석을 해주고, 예외적으로 하지 않게 돼 있는데 반대로 운영되고 있다. 판사 입장에서는 집행유예로 풀러날 법한 사건만 보석을 해준다. 그게 한 30%(보석 인용률과 비슷한 수치) 된다. 일단 풀어줬다가 선고 때 다시 법정구속을 하면 판사가 욕을 많이 먹는다. 보석으로 풀려나면 집행유예가 나온다고 생각을 하는 문화가 이미 자리잡고 있다.” 한 현직 형사합의부 부장판사도 “보석을 결정할 때 구속단계와 다른 사정이 있느냐를 보는 게 관행처럼 돼 있다. 없으면 보석 기각이다. 풀어줬다가 실형 선고하고 다시 집어넣는 데 심정적 저항감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변호인 역시 보석으로 풀려난 피고인이 재수감 될 수 있는 위험을 부담스러워 한다. 보석을 받아낸 데 따른 보수를 받은 경우라면 더 그렇다. 더군다나 무죄를 주장할 게 아니라면 미결수 신분으로 형기를 채우는 게 낫다는 의뢰인도 적지 않다. 형사사건 경험이 많은 김계리(35·42기) 변호사는 “피해자와 합의가 되거나, 재산범죄의 경우 피해액을 갚는 등의 사정변경이 아니라, 단순히 방어권 보장을 위해 보석을 해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보석 인용률이 너무 낮은 것은 맞다, 그래서 전관 시장이 커진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사업을 운영하는 사람처럼 당장 나가야 할 절박한 사람이거나 무죄를 주장하면서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아니면 보석을 잘 신청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보석에 더 적극적이어야 하는 이유는 구속된 상태로 재판을 하면 피고인의 방어권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판사 재직 시절 영장 심문 제도를 입안하는 데 기여했던 법무법인 소백의 황정근(58·15기) 변호사는 “보석을 해줘야 하는 이유는 재판 과정에서 방어권 보장 때문이다. 구속 되면 피고인과 변호인 사이에 접견 교통이 어렵다. 구속기한 6개월 내에 복잡한 사건을 무리하게 일찍 끝내려는 관행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다른 형사합의부 부장판사도 “피고인이 재판에 나온다는 점만 담보되면 불구속 재판을 하는 게 당연한 모습인데, 우리는 검찰 수사단계에서 구속이 되느냐 마느냐에 너무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 부장판사는 “보석도 구속기간 6개월을 다 채웠을 때 이런 저런 조건을 달아서 해주는 기형적인 현상이 생기는데, 무죄추정 원칙에 대해 판사들이 깊은 고려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른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지금은 오히려 소신을 가지고 형사소송법에 맞는 재판을 하는 판사들이 욕을 먹는 것 같다. 법원이 전향적으로 보석제도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jyg9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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