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심사 불복 ‘영장항고제’필요
황정근(58·사법연수원 15기·사진) 법무법인 소백 변호사는 우리나라 영장 제도의 산증인이다. 판사 재직 시절 1996년부터 2년간 법원행정처 송무심의관으로 일하며 영장심사제가 도입되는 데 실무 작업을 맡았다.
“영장심사 제도가 도입된 97년 이후부터 보석허가율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구속을 쉽게 하고 보석을 해주는 구조였어요. 일단 잡아넣는 걸 하지 말자고 해서, 1년에 14만명 구속되던 게 3만명으로 줄어들었어요. 물론 구속이 줄었어도 보석은 많이 해줘야 합니다. 나중에 실형이 나오면 법정구속을 하면 되니까요.”
판사들 사이에서는 구속된 피고인을 풀어주면 안된다는 관념이 자리잡고 있다. 어떻게든 구속기간 6개월 내에 재판을 마무리 지으려 한다. 황 변호사는 ‘낡은 관습’이라고 지적한다. “형사사건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6개월 내에 선고를 하던 건 사건이 복잡하지 않은 시대에 생긴 불문율이죠. 일본만 해도 옴진리교 사건을 20년 동안 재판했습니다. 대법원도 국정농단 사건에서 법리가 복잡하니까 6개월 넘으면 일단 석방을 하고 재판을 했습니다. 대법원이 모범을 보이는데, 사실심에서 그렇게 못할 이유가 없어요. 게다가 경제범죄라든가, 사안이 복잡하고 등장인물이 많은 사건은 대게 보석을 해도 도망할 염려가 없는 경우가 많죠.”
보석을 하면서 피고인이 만나는 사람이나, 이동하는 장소를 제한하는 조건을 다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외국에 나갈 때 허가를 받는 것처럼 도망할 염려가 있는 걸 제한하는 정도로 해야지, 누구를 만나지 말라는 건 가택연금이지 보석이 아니잖아요. 보석은 말 그대로 ‘보증금 석방’이에요. 구속만기로 풀어주는 게 부담스러워서 조건을 달아 석방하는 것은 일종의 편법 아니겠습니까.”
황 변호사는 영장 심사에도 불복절차를 두는 ‘영장 항고제’ 찬성론자다. “어떤 경우에 도망이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는 건지 우리는 판례가 없어요. 반면 일본과 독일은 판례가 많이 쌓여있죠. 재판이라는 것은 1심 판사가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닙니다. 상급심의 견제를 받는 게 재판 제도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하면 신속성은 떨어지겠지만, 그래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황 변호사는 검찰 개혁 못지 않게 구속 제도를 포함한 사법제도 개선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지금 보면 영장전담 판사가 전권을 가지고, 심문을 6시간씩 하는데 원래 우리가 제도를 도입할 때 생각했던 피의자 심문은 이런게 아니었습니다. 권한이 구속심사에 쏠려 있는 것은 잘못된 거지요. 국민 입장에서 수사를 공수처가 하든, 검찰이 하든, 경찰이 하든 어떤 차이가 있겠습니까. 내가 어떤 경우에 구속이 되느냐 마느냐가 훨씬 중요하겠죠. 절차가 잘 다듬어져야 하고, 그런 걸 고치는 게 사법개혁 아닐까요.”
좌영길 기자/jyg97@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