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일 서울시설공단 이사장은 취임 5개월 간 조직을 살펴본 결과 공단 미래를 책임질 젊은 층에서 놀라울 정도로 뛰어난 역량과 열의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조 이사장은 시민 안전 문제를 선제적으로 발굴, 대응하는 기본에 충실하고 나아가 개발 기술의 해외 진출까지 추진하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
1000만 서울 시민의 일상과 밀접한 도시기반 시설의 A부터 Z까지를 관리하는 서울시설공단의 체질이 바뀌어가고 있다. 공조직 특유의 수동성·경직성이 적극적이고 유연하게 세포 단위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서울시 안전총괄실장(1급)을 지낸 조성일(61) 16대 이사장이 지난 7월 부임하고서 부터다. 그는 30여년 동안 건설, 도시계획, 안전분야에서 근무 한 자타공인 안전 전문가다. 3선 시장으로서 시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시설공단 대표에 그를 앉힌 이유가 무엇일까. 도시 노후화로 인해 도로, 터널, 교량, 상수도, 주차시설, 공원, 경기장, 심지어 공공자전거 따릉이까지 현 시점에서 인프라 분야 안전 관리에 더욱 신경쓰겠다는 임명권자의 의지가 읽힌다. 조 이사장은 또 공무원 재직 시 남들이 손사레 치는 업무를 2% 다른 방식으로 여럿 해결해 낸 혁신가여서 혁신이라면 빼놓을 수 없는 박 시장과도 손 발이 맞는다.
취임 5개월이 된 조 이사장을 최근 청계천로 공단 집무실에서 만났다. 현장 근로자들이 입는 점퍼 차림이던 그는 사진 촬영을 위해 양복 재킷으로 갈아입었다. 취임 첫 날 별도 취임식을 생락한 채 내부 결함으로 보수 중인 내부순환로 정릉천 고가교 현장으로 달려 가 업무를 봤다는 이야기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조 이사장은 “입사 지원서에도 현장을 중시하겠다고 썼다. 현장에 답이 있다고 하지 않나. 취임 날 직원들의 손을 잡고 현장의 중요성을 인지시켰다”고 했다. 그는 지금도 매주 3회 현장을 찾는다. 목적은 두가지다. 공단 직원의 93%를 차지하는 현장 직원들을 격려하기 위해서가 먼저다. 두번째는 직접 눈으로 현장 안전 위해 요소를 찾아 챙기기 위해서다. 이사장이 직접 나서니 현장 작업장에는 긴장이 돈다. 그는 “나사 풀린 곳이 없는지 살피는 일”이라고 비유했다. 현장을 많이 다니는 대신 내부 회의 시간은 단축했다. 과거 2시간 씩 하던 회의를 15분으로 줄이는 등 일하는 방식을 효율화시켰다.
실제로 이사장 눈에 안전 위해 요인이 발견돼 개선된 일이 있다. 홍지문 터널에 갔을 때다. 터널 배기구는 평소에는 내부에 공기를 공급하는 급기구지만, 화재가 발생하면 팬을 거꾸로 돌려 연기를 밖으로 빼내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배기구 앞에 큰 나무들이 무성했다. 터널 안에서 불이 나면 자칫 산으로도 번질 수 있는 불쏘시개가 될 우려가 있어서 바로 제거를 지시했다.
이처럼 잠재적 위험요소가 도시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그는 ‘위험도 알아야 보인다’는 신조 아래 국내외 각종 사고 동영상을 사내 인트라넷 망에 공유해 전 직원이 볼 수 있게 했다.
“서울은 1970~80년대 고도경제 속에 압축 성장을 해왔죠. 우리보다 앞서 1930년대 건설된 뉴욕, 1950~60년대 건설한 도쿄가 노후화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사회간접인프라 수준이 D+학점(미국토목학회, 2017년)이며 우리 돈으로 5200조원이 들어간다는 보고가 있고, 일본의 경우 2010년부터 노후 심각성을 인지해 사회 전체적으로 대비하고 있습니다. 서울은 2030년에 심각한 노후화를 겪을 것으로 예상되며 이미 진입 단계에 와 있습니다.”
조 이사장이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안전 전문가가 된 데에는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등 충격적인 사고를 현장에서 직접 보고 나서다. 1993년 원효대교가 붕괴된다고 뉴스 보도가 나온 뒤 그는 종합건설본부(현 도시기반시설본부) 토목부에서 일하며 교량 보수를 공부했는데 이듬해 무너진 다리는 성수대교였다. 조 이사장은 “아픈 환자(다리)가 발생했는데 환자가 몇 명인지 다른 환자는 괜찮은지 알 수 없었으며, 이를 검사해야할 의료진 조차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고 당시 허술했던 교량 관리를 전했다. 1년 뒤에는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현장에 나가보니 끔찍했어요. 지금도 트라우마가 남아 있어요. 다시는 그런 어처구니 없는 사고를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안전분야에 매진하게 된 계기다. 성수대교 사고 때 서울시에 기술자문을 해 준 영국인 박사와의 인연으로 영국 써리대로 유학길에 나섰다. 교량 관리와 관련한 전문이론을 배우며 박사 학위를 땄다. 퇴직 후에는 서울시립대에서 도시노후화, 교량·터널 붕괴, 도로함몰, 지진 등 도시방재와 안전문제 전반에 대해 강의하며 후학을 양성했다. 현재도 주말엔 박사과정에서 강의 중이며,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 자문위원으로 활동 하고 있다. 그는 “안전은 중앙정부 행정 전반에서 뒤로 밀리고, 민간에선 이윤에 밀린다. 그렇게 밀리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진거다. 안전의 중요성은 꾸준히 알려야한다”고 힘 줘 말했다.
그는 아이디어가 남다른 혁신가 스타일이다. 시 도시안전실장 재직 때 1884년부터 영국대사관이 점유해 통행이 불가능했던 덕수궁 돌담길 170m 구간을 재치있는 묘안으로 돌려받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우리 땅을 돌려달라는 서울시와 못 주겠다는 대사관이 대립각을 세울 당시 그는 문화 거리를 만들어 영국과 한국의 전통을 동시에 살리는 공간으로 활용하자고 대사관 측에 제안했다. 영국이 이를 수락해 지난해 12월 결국 시가 점유구간을 반환받고 돌담길을 완전히 연결, 덕수궁 둘레길을 완성했다.
올초 서울시가 성곽마을인 성북2구역과 신월곡1구역간에 적용하기로 한 ‘결합개발’도 그가 고안한 제도다. 이는 개발되는 쪽이 용적률을 높여 받는 대신 규제에 묶여 개발되지 못하는 쪽에 이익을 나눠 주는 일종의 개발권 양도제 개념이다. 그는 “서로 갈등요소가 있을 때 덮어두지 않고, 그것을 슬기롭게 해결하는 쪽으로 집중했고, 거기서 성과를 냈을 때가 상당히 보람도 있고 재미도 있었다”고 떠올렸다.
조 이사장은 취임 100일 뒤 박 시장에게 현장, 소통, 안전, 혁신 4개 분야를 강화하겠다고 보고했다. 또 공단이 관할하는 다종다양한 사업들 가운데 따릉이, 장애인택시, 고척돔구장, 어린이대공원을 집중적으로 챙기겠다고 했다.
먼저 따릉이에 중간 안전 바를 달았다. 자전거 차체가 균열이 자주 생겨서다. 처음에 시에선 디자인 때문에 불가능 하다고 했으나 조 이사장은 교통실장에게 직접 전화해 “디자인이 먼저냐 안전이 먼저냐”는 묻고, ‘안전이 우선한다’는 판단을 받아 처리했다.
공단은 고척돔구장, 어린이대공원 활성화 방안 마련을 위해 직원이 자율 토론하는 오픈이노베이션과 용역 실시 등 투트랙으로 진행 중이다. 이 과정에서 조 이사장은 “변화되는 소비 패턴을 좀더 액티브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매너리즘 타파를 강조했다.
그는 임기가 끝나는 2년 7개월 뒤 공단의 변화된 모습을 예측해달라는 질문에 “공단이 꼭 필요한 존재로 인식되는 기관, 일부 분야에선 국내에서 최고 수준의 기관이 돼 있기를 바란다. 간부 몇명이 잘 하는게 아니라 직원 전체가 활력을 갖고 자긍심을 갖는 조직이길 바란다”고 했다.
앞선 세대로서 책임감도 드러냈다. 그는 “젊은 뒷세대는 인구는 줄어들고 초고령화사회로 복지부담이 커지는데, 여기에 인프라 노후화까지 겹치는 것”이라며 “뒷세대에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 인프라를 지속적으로 관리해 뒷세대에 마이너스 유산으로 남겨줘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매주 현장을 바쁘게 챙기는 일은 보통 체력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는 하루 일과를 아침에 수영을 하는 것에서 시작해 오후 6시에 퇴근하는 것으로 마친다. 주말에는 되도록 일하지 않는다. 대신 업무 시간에는 강도 높게 일한다. 그는 “업무 시간에 세게 해서 그런 지 직원들이 마냥 좋아하는 거 같진 않다”며 웃었다.
대담=이진용 부장·정리=한지숙 기자/js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