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강도, 성희롱에 이용…운송장 번호 폐기 습관화 해야
택배 상자에 붙여진 운송장. 고객 이름, 주소, 전화번호까지 모두 나와있었다. [정세희 기자] |
[헤럴드경제=정세희 기자]010-XXXX-XXXX. 지난 8일 서울 용산구 주택단지 쓰레기장 앞. 버려진 택배 종이상자에 붙여진 운송장에는 받는 사람의 이름, 휴대폰 번호, 주소가 쓰여있었다. 심지어 회사 이름과 직책까지 나와있었다. 보이스피싱, 광고, 강력범죄 등에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개인정보를 이용한 각종 범죄가 활개를 치고 있다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개인정보 안전 불감증은 여전했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였다. 같은날 경기도 고양시의 한 아파트단지 쓰레기 분리수거장에도 개인정보를 떼지 않은 택배 상자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고객 주소 일부와 휴대폰 번호를 암호화한 경우가 다수였지만 여전히 개인정보가 모두 노출된 경우도 있었다. 소비자가 이름이나 동·호수만 지우는 등 일부만 지워 개인정보를 추측할 수 있는 것도 보였다. 아파트 경비원은 “운송장을 제거하지 않은 채 버리는 사례가 여전히 많다”며 “비닐에 붙여진 종이는 분리수거 하기 위해 하나씩 떼야 하는데 사람들이 깜빡하거나 귀찮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범죄는 점점 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보이스피싱이다.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지난해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전년(2017년·2431억원)보다 82.7%(2009억원) 증가한 총 4440억원으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같은 기간 피해자도 3만919명에서 4만8743명으로 57.6%(1만7824명) 늘었다. 개인정보를 활용한 강력범죄도 발생한다. 지난 2016년 부산에서는 택배 운송장 번호를 이용해 택배 기사로 위장해 을 한 20대가 경찰에 붙잡혔다. 지난해 10월에는 한 남성이 택배 운송장 번호에 적힌 전화번호를 갖고서 발신자표시 제한 전화로 70명에게 성희롱을 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아직 택배 상자의 개인정보 유출을 원천적으로 막는 방법은 없다. 최근 많은 택배 회사가 개인정보를 암호화 하고 있지만 회사 사정에 따라 그렇지 않은 회사도 여전히 존재한다. 구매자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상품을 주문할 때 입력한 배송지 정보의 연락처가 택배사 측에 노출되지 않도록 일회용 안심번호를 발급하는 ‘안심번호 서비스’가 있지만, 안심번호 송수신 과정에 오류가 잇따라 택배사와 소비자 모두 선호하지 않는다.
특히 최근 편의점 택배가 늘면서 손으로 운송장을 직접 쓰는 경우도 늘고 있는데 이 경우 개인정보가 전혀 암호화되지 않기 때문에 개인정보 유출 위험은 더욱 커졌다. 소비자가 운송장을 완전히 폐기하거나 개인정보를 지우는 것이 가장 간단하다. 업계 관계자는 “택배를 받았을 때는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운송장을 떼어내 개인정보를 갈기갈기 찢거나 물파스 또는 아세톤으로 글자를 문질러 지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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