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전자·자동차 확장…해외고용 15만 기록
대우건설·미래에셋대우 등에 이름 흔적남아
창업 30년만에 재계 2위로 우뚝서며 한국 산업 발전을 이끌었던 대우그룹의 성공신화는 김우중 전 회장 별세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대우그룹은 원단 수출에서 시작해 ‘대우 상사맨’들을 키워내고, 전자와 자동차, 건설, 중공업 등 대부분 산업으로 빠르게 확장하면서 전천후 성공신화를 썼지만 외환 위기의 직격탄을 맞아 성공만큼 빠른 몰락의 역사를 쓰기도 했다.
대우그룹의 여정은 섬유 수출업체인 한성실업에 근무하던 만 30세의 김우중 전 회장이 대도섬유 도재환 씨와 함께 1967년 대우실업을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대도섬유는 트리코트 원단 생산업체로, 대도섬유의 대(大)와 김우중의 우(宇)를 딴 대우실업이 그룹 모체가 됐다.
대우실업은 재계 역사상 가장 빠르게 동남아 등 글로벌 시장으로 뻗어나갔다. 당시 자본금 500만원으로 출범한 대우실업은 첫해부터 싱가포르에 트리코트 원단과 제품을 수출해 58만 달러 규모의 수출실적을 올린 데 이어 인도네시아와 미국 등으로 시장을 넓혀 큰 성공을 거뒀다. 수출 경험을 바탕으로 1975년에는 한국의 종합상사 시대를 열고 국내 중소기업의 수출창구 역할을 했다.
대우는 1973년 건설업체인 영진토건을 인수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했다. 1976년에는 옥포조선소를 대우중공업으로 만든 데 이어 1974년 인수한 대우전자와 1983년 대한전선 가전사업부를 합쳐 대우전자를 그룹 주력으로 삼고 성장시켰다.
대우그룹은 또 에콰도르, 수단, 리비아 등 아프리카 시장 진출을 통해 해외사업 터를 닦았다. 특히 1990년대 동유럽의 몰락을 계기로 폴란드와 헝가리, 루마니아, 우즈베키스탄 등지에서 자동차공장 등을 인수하거나 설립하는 등 김우중 전 회장의 ‘세계경영’ 전초가 됐다.
설립 30년만에 589곳의 해외 네트워크, 15만2000명의 해외고용 인력을 자랑하며 승승장구하던 대우그룹은 1997년 11월 닥친 IMF 외환위기로 급격히 몰락했다. 대우그룹 구조조정의 핵심사안이던 대우차-제너럴모터스(GM) 합작 추진이 흔들리고, 금융당국의 기업어음 발행한도 제한 조치에 이어 회사채 발행제한 조치까지 내려지면서 대우그룹은 급격한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1999년 8월 모든 계열사가 워크아웃 대상이 되면서 그룹은 끝내 해체됐다.
국내 재계에서 ‘대우’라는 정체성은 희미해져가고 있지만, 명맥은 끊기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현재 사명에 ‘대우’가 들어간 회사는 대우건설, 위니아대우(옛 대우전자), 대우조선해양(옛 대우중공업 조선해양부문), 미래에셋대우(옛 대우증권) 등이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현대중공업이 인수를 추진하고 있어 인수 후 ‘대우’라는 이름이 빠질 가능성이 높다.
대우그룹 해체 20년을 맞은 올해 4월에는 대우실업이 모태인 포스코대우가 포스코인터내셔널로 사명을 변경했다. 포스코그룹은 2010년 대우인터내셔널을 인수하며 수년간 ‘대우’라는 이름을 썼지만 포스코그룹사의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해 지웠다. 또 2002년 미국 GM이 대우자동차를 인수한 뒤에는 ‘GM대우’로 출발했지만 대우 브랜드에 대한 부정적 인상 등을 고려해 2011년 한국GM으로 사명을 바꿨다.
대우전자는 2006년 파산 후 워크아웃과 매각을 거쳐 대우일렉트로닉스, 동부대우전자로 이름을 바꾸면서도 ‘대우’는 유지했다. 그러다 지난해 대유위니아그룹이 대우전자를 인수하면서 현 사명인 ‘위니아대우’를 쓰고 있다.
이세진 기자/jin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