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혜 품목’ 경유 가격은 기대만큼 오르지 않아…공급과잉 지속
“미중무역분쟁으로 인한 수요 감소가 가장 걱정거리”
SK이노베이션 울산공장 전경 [SK이노베이션 제공] |
[헤럴드경제=이세진 기자] 지난달 말 18년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했던 정제마진이 12월 들어 소폭 상승했지만 여전히 ‘0달러 대’에 머물면서 4분기 정유사들의 실적 우려가 커지고 있다.
내년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 규제가 본격 시행되기 전 연말부터 수혜를 입을 것으로 기대했던 정유업계는 내년으로 그 시기를 늦춰 잡고 있다. 기대만큼 가격이 오르지 않는 저유황유와 밑지고라도 팔 수밖에 없는 고유황 벙커씨유 사이 ‘고차방정식’이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는 설명이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12월 첫째주 기준 싱가포르 복합정제마진은 배럴당 0.2달러를 기록했다. 앞서 정제마진은 3분기 들어 9월 셋째주 배럴당 10.1달러를 깜짝 기록한 뒤 10주째 하락하던 중, 11월 셋째주에 -0.6달러를 기록하면서 18년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 정제마진을 기록했다. 이어 넷째주에는 -0.9달러까지 떨어지며 불안감을 키웠다.
다행이 12월 들어 소폭 반등했지만 여전히 손익분기점을 한참 밑도는 정제마진에 정유사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국내 정유업계의 손익분기점은 배럴당 3~4달러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정유업계에서는 이른바 ‘IMO2020’ 효과 지연과 함께 규제가 몰고 온 복합적인 가격 변동 요인들을 낮은 정제마진의 원인으로 보고 있다.
특히 국제해사기구가 이번 규제를 통해 ‘퇴출 대상’으로 지목한 선박용 고유황 중질유, 즉 벙커씨유 가격이 폭락한 까닭이 크다. 벙커씨유는 원유 정제 과정에서 나오는 잔사유로, 황 함량이 높아 선박유 이외에도 발전소나 공장 보일러 연료 등 기존 활용도 또한 급감하는 추세다.
각국의 환경규제가 시행되면서 벙커씨유에 대한 수요가 크게 줄었고, 역사상 최저점 수준의 가격이 형성됐다. 특히 최근에는 IMO2020을 앞두고 선사들이 벙커씨유 재고분을 확보할 이유가 없어져 가격이 더 폭락했다.
업계에 따르면 4분기 들어 벙커씨유는 배럴당 35달러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이는 현재 50~60달러 선인 원유 가격의 절반 수준으로, 원유 정제 과정에서 원료의 반값인 제품이 팔리는 셈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벙커씨유 가격은 두바이유 가격과 비교해 5달러 내에서 차이를 보였지만 최근의 반토막 난 가격은 굉장히 이례적”이라면서 “정제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오는 벙커씨유를 팔기는 해야하고, 그러자면 가격이 너무 낮아 팔면 팔수록 손해인 ‘울며 겨자먹기’인 상황”이라고 전했다.
다만 정제 후 나오는 휘발유, 경유 등 고부가 제품들이 정유사들의 전체 마진을 결정하고 있어 벙커씨유 가격이 실적과 반드시 동일선상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이 관계자는 설명했다.
그러나 폭락한 벙커씨유 가격과 반대편에서 ‘규제 수혜 제품’에 해당하는 경유 가격은 크게 오르지 않는다는 게 정유사들의 최대 고민이다.
황규원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경유와 중유 마진 약세가 내년 1분기까지 이어갈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중국의 소규모 정제설비를 일컫는 ‘티팟(teapot)’ 가동률이 올해 평균 63%를 웃돌면서 중유와 경유 물량이 쏟아지고 있다”면서 “미국 정유설비 가동률도 개선 중이라 공급 과잉 국면이 지속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중 무역분쟁도 경기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업계 종사자는 “소비 증가량을 예측해 각국에서 설비를 증설하며 공급을 늘려왔지만, 수요가 기대만큼 따라주지 않는다면 가격은 계속 저점일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jin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