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9일 별세했다. ‘세계경영’을 앞세워 한시대를 풍미한 재계의 거목이다. 아직까지 곳곳에 ‘대우’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름으로, 사람으로.
#대우=71억원. 지난해 포스코인터내셔널(옛 포스코대우)이 ‘DAEWOO’ ‘大宇’ 등의 브랜드 사용료(해외 상표권)로 받은 금액이다. 대우는 망했어도 이름은 남았다. 대표적인 곳이 증권사 미래에셋대우다. 미래에셋증권이 2016년 굴지의 대우증권을 인수한 후 미래에셋대우로 출범했다. 당시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은 “한국 증권시장에서 대우라는 브랜드는 역사를 관통한다”며 ‘대우’ 이름에 애착을 보였다. 현재 산업은행이 대주주인 대우건설도 있다. 여전히 국내 건설업계의 명가로 꼽힌다. 새 주인 찾기가 진행중이어서 오너십의 변화가 예고돼 있다. 주인이 바뀔 경우 ‘대우’ 브랜드가 유지될 지는 미지수다. 산업은행이 현대중공업에 넘긴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현대중공업이 ‘대우’ 이름을 유지할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대우’ 이름값의 대부분을 내고 있는 곳은 대유그룹 산하의 위니아대우(옛 대우전자)다. 해외에서 ‘대우’ 브랜드를 적극 활용하면서다.(포스코인터내셔널과 위니아대우의 브랜드 사용 계약은 2020년 6월말 종료된다. 계약 연장 여부는 미정이다) ‘대우’ 상표권을 갖고 있는 포스코인터내셔널은 해외에서 사용할 때만 브랜드 사용료를 받는다. 옛 대우 계열사들의 경우 상표권을 공동소유한다고 간주돼 국내에서는 그냥 쓸 수 있다. 회사 이름에서 ‘대우’를 뗀 포스코인터내셔널이 ‘대우’ 브랜드로 연간 수십억을 벌고 있는 건 아이러니다.
#대우맨=아직도 현역에서 빛을 발하는 대우맨들이 있다. 김현중 한화건설 부회장,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이태용 아주그룹 부회장 등이다. 각각 대우건설, 대우자동차, 대우 출신이다. 아무래도 줄곧 업계 1위였던 증권 쪽에서 두드러진다. 현직 CEO로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 김해준 교보증권 대표가 있고, 더 위로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부회장이 있다. 한때 ‘증권업계 사관학교’로 불렸던 대우증권이다.
임원급 ‘대우맨’은 각 증권사에 수두룩하게 포진해 있다. 대우증권을 품은 미래에셋대우는 현재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업계 1위다. 경쟁력 척도인 자기자본 규모가 경쟁사들의 배에 가깝다.(9조1000억원) ‘대우’라는 지렛대가 활용된 결과다. 미래에셋대우의 해외 진출은 공격적이다. 홍콩·런던·LA·인도·브라질·베트남·인도네시아·뉴욕·싱가포르·베이징·몽골 등 세계 각지에 부챗살처럼 퍼져 나가 있다. 미국, 유럽 등의 현지 부동산도 다수 매입하며, 미래에셋이라는 이름을 전세계에 전파중이다. 박현주 회장이 연간 절반 이상을 해외에 머물며 직접 독려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며 해외를 누비던, 원조 ‘대우맨’ 김우중 회장이 오버랩된다고 하면 과도한 시각일까.
김우중 회장은 대비(對比)의 경영인이다. ‘글로벌’을 외쳤지만, ‘민족’에 집착했다. 세계경영의 큰그림을 그리는 ‘매크로’ 경영자였지만, 직원 옷차림과 잠자리까지 챙길 정도로 세심한 ‘마이크로’ 경영자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국가경제에 기여한 ‘명(明)’과 부실기업의 그림자라는 ‘암(暗)’을 함께 남겼다. 공(功)과 과(過)를 엄중한 저울에 다는 일은 이제 남은 자들의 몫이다. pilso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