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 “연탄가스 답답한데
미세먼지 와 더 답답” 호소
노인들 “숨이 차 마스크도 힘들어”
11일 오전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 입구와 뒤쪽 대모산이 뿌연 미세먼지로 덮여 있다. 미세먼지 측정기를 켜자 PM10 수치가 281.6 ㎍/㎥까지 치솟았다. 박상현 기자/pooh@heraldcorp.com |
오른쪽은 마을의 한 판잣집 앞에 타고 남은 연탄재가 쌓여 있는 모습. 미세먼지 수치는 마을 입구보다 더 높게 나왔다. 박상현 기자/pooh@heraldcorp.com |
“미세먼지도 불안한데 연탄가스(일산화탄소) 냄새가 더 무서워서 문을 열어놔요, 얼마나 독한지 100명도 더 죽이겠더라고.”
서울 강남구의 마지막 남은 판자촌 구룡마을에 30년 이상 거주한 주민 김모(80) 씨는 이번 겨울 연탄가스 배출기를 설치했다. 이전엔 연탄가스 냄새가 심해지면 창문을 열어 환기했지만, 최근 심해진 미세먼지로 그마저도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11일 오전 7시 방문한 구룡마을은 입구에서부터 뿌연 미세먼지가 가득했다. 다닥다닥 붙은 나무 판잣집 너머 대모산과 구룡산은 미세먼지로 인해 능선만 까맣게 겨우 보였다. 주민들은 집집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난방을 했다. 열 방출을 막기 위해 지붕 위에 올려둔 모포 재질의 보온덮개 위에는 곰팡이와 이끼가 끼어있었다. 대부분의 집 밖에는 다 쓴 연탄들이 놓여 있었다.
쌓여있는 연탄 앞에서 미세먼지 측정기를 켜자, PM2.5 수치는 최고 201.1 ㎍/㎥, PM10 수치는 281.6 ㎍/㎥까지 치솟았다. 마을 초입에서 측정기를 켰을 때 나왔던 PM2.5 148.4㎍/㎥, PM10 207.7㎍/㎥보다 수치가 올랐다. PM2.5는 1000분의 2.5㎜보다 작은 초미세먼지를 PM10은 1000분의 10㎜보다 작은 미세먼지를 뜻한다. 미세먼지(PM10)가 151㎍/㎥ 이상이면 ‘매우 나쁨’으로 구분된다. 초미세먼지(PM2.5)의 경우 76㎍/㎥ 이상이면 ‘매우 나쁨’으로 구분된다. 75㎍/㎥ 이상으로 2시간 지속하면 초미세먼지 주의보가 발령된다.
구룡마을 주민들은 최근 들어 추위와 함께 심해진 미세먼지로 인해 이중고를 겪고 있었다. 일산화탄소 배출을 위해선 창문을 열어야 하지만 그럴 경우 미세먼지에 노출된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창문을 열어 미세먼지를 맡는 쪽을 택했다. 주민 최우메자(79)씨는 “연탄을 안 때면 추워서 못 산다”며 “저녁에 잠에 들 때마다 가스 냄새 때문에 불안해 밖에 미세먼지가 심해도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한다”고 말했다.
주민 김모(59)씨는 “아침에 일어나면 연탄가스 냄새 때문에 산 밑에 있어도 답답한데, 미세먼지까지 심해지는 날이면 더 답답하다”고 말했다. 주민 김두일(68)씨는 “미세먼지보다 일산화탄소가 더 무서워 배출이 안 되면 중독이 되니까 미세먼지가 심해도 문을 연다”고 말했다.
노인들은 숨이 차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도 힘들어 했다. 20년 째 구룡마을에서 홀로 살고 있는 신모(73)씨는 “젊었을 때는 마스크를 써도 힘들지 않았는데 지금은 숨차고 답답해서 힘들다”며 “그래도 미세먼지 때문에 두꺼운 것을 썼다”고 말했다.
구룡마을의 또 다른 문제는 바람에 날려 방으로 들어오는 보온덮개 가루이다. 구룡마을에서 30년 거주한 양원택(69)씨는 “보온덮개 가루가 호흡기에 치명적인 1급 발암물질이라고 들었다”며 “내 집 환기 시키려다 옆집의 그 가루가 들어올 수도 있고 미세먼지가 들어 올까봐 창문도 열 수 없어 더 곤욕이다”라고 말했다.
정부와 서울시는 지난 2017년부터 노인복지시설 등에 초미세먼지 마스크를 무료로 보급하는 등 초미세먼지에 대한 고령화 대책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연탄가스와 미세먼지로 인한 이중고, 숨이 가빠 마스크를 착용하지 못하는 현실 등 좀 더 현실적인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이날 국립환경과학원은 아침까지 대기 정체로 국내에서 발생한 미세먼지에 낮 동안 국외에서 미세먼지가 추가적으로 유입돼 전권역이 미세먼지 ‘나쁨’, 오전 수도권은 농도 ‘매우 나쁨’이 될 것으로 보았다.
박상현 기자/pooh@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