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집 주변 국공립어린이집에 전화를 돌렸다. 아이가 현재 다니고 있는 어린이집을 제외하고 대기는 최대 2곳까지만 걸 수 있으니, 그래봐야 두 통이 전부다. 실망의 연속. 맞벌이 자녀 ‘200점’은 점수도 아닌 모양이다. 대기순번에서 한참 더 밀려나 있다. 임신확인서와 함께 대기를 걸어놓는다는 어린이집 입소 전쟁은 체감 상 과거와 별반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아이는 25평 확장형 아파트를 개조한 가정 어린이집에 다닌다. 영유아 17명, 보조교사를 포함해 성인 6명이 한 공간에서 수 시간을 머무른다. 같은 연령대를 한 반으로 묶어 아이는 또래 3명과 함께 3평 남짓한 작은 방에서 논다. 안전을 위해서 아이가 드나들지 못하도록 방문에는 안전문까지 달려 있다. 숫제 동물병원 우리 속 강아지들과 다를 게 없다. 비좁은 공간이 한창 방방 뛰는 것에 재미 붙인 활발한 아이는 얼마나 답답할까. 그래서인지 아이는 아침이면 어린이집에 가지 않겠다고 떼를 쓴다.
이 가정어린이집도 간신히 ‘새치기’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사한 지 얼마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원장은 종일 맡길 아이를 원해 맞벌이 자녀부터 골라 입소를 ‘허’하는 듯 했다. 시간맞춤형 보육보다는 종일형 보육이 정부 지원이 더 크다. 아이를 오전에만 잠시 맡겨도 한 달 보육로로 나라에서 주는 95만원 가량이 어린이집 계좌로 매달 입금된다. 대개 아이들은 오전 9시~10시에 등원하고, 오후 4시에 하원한다. 법정시간은 오전 7시30분부터지만 그 시간에 아이를 맡길 일이 생겼을때 교사는 대놓고 싫은 기색을 했다. 그래서 오전, 오후에 하루 몇시간씩 아이의 등하원을 돕는 등하원도우미가 직장있는 엄마들에게는 필수다. 한 달 최소 150만 원이 든다. 한 달 보육료로 100만 원 가까운 세금을 쓰고도 개인적인 비용을 들여야하는 이중구조. 조부모 등 가족이나 친지, 지인 등 나 아닌 타인의 도움 없이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조차 보낼 수 없는 게 우리나라 영유아 보육의 현실이다. 만일 가족이나 친지가 없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한부모 가정이라면 어떨까. 생각만해도 아찔하다. 구청의 외면에 다섯살박이 아들과 굶어죽어야만했던 탈북 엄마의 심정이 절절이 이해된다.
박원순 서울 시장은 3년 전 이 무렵에 2020년에는 서울 어린이집에 다니는 2명 중 1명이 국공립어린이집에 다닐 수 있게 하겠다는 ‘서울시 보육비전 2020’을 발표했다. 5780억 원을 들여 1051곳인 국공립 수를 2154곳으로 2배 늘리겠다고 공언했다. 시가 목표한 2020년이 한달 도 채 남지 않았다. 과연 그렇게 되었을까.
유감스럽게도 정책 수요자가 느끼기에 획기적으로 나아진 건 없다. 현재 국공립 어린이집 수는 1642곳이다. 목표치의 76%다. 내년에는 100곳 이상 가량 확충 예정이라 목표치에 미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마저도 16일 서울특별시의회 본회의에서 내년 국공립어린이집 확충 예산 100억 원이 깍였다. 39조원이 넘는 사상 최대 규모의 내년도 예산에서 총선을 앞둔 지역 선심성 예산들에 밀렸다.
현재 서울 국공립 어린이집 등원 비율은 39.4%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영유아 기준이다. 여러 사정으로 가정 내 보육을 하는 영유아 숫자는 빠진다. 박 시장은 요사이 민선 5~7기의 성과로 영유아 2명 중 1명이 국공립 어린이집에 다닌다고 자랑한다. 현 시점에선 시책을 과장광고하는 것이다.
박 시장은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눈물 흘렸다는 감상평을 종종 소개하곤 한다. 시장이 저출산과 경력단절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한다면 감성적 접근보다 보다는 수요자 중심의 면밀한 접근을 해달라고 요청하고 싶다.
예컨대 마을이나 동네 중심이 아닌 ‘일 터’ 중심으로의 보육공간 설계를 적극 고려해볼 것을 제안한다. 시가 역점 추진하는 역세권 청년주택이나 콤팩트시티에 신혼부부용 주택의 경우 39㎡로 둘이 살기도 비좁다. 갓 결혼한 부부가 출산과 학령기 이전 육아기까지 공공임대주택에서 만족도 높게 거주하게끔 정주여건 개선과 함께 놀이방, 어린이집 등 보육환경도 미리 설계에 담아야한다. 또 직장어린이집을 갖추지 못한 중소기업을 위한 거점형 직장어린이집을 역세권, 도심권에 전향적으로 늘려야한다. 세종시가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로 정평난 건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걸어서 5~10분 거리에 직장-집-어린이집이 몰려 있어서라고 기자는 생각한다. jsha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