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정오께, 서울지방경찰청 수뇌부가 비상이 걸렸다. 영등포 경찰서가 관할인 국회에 태극기 부대가 진입한 것이 원인이다. 경찰 추산 수천명의 ‘태극기 부대’는 이날 낮 잠시 열린 국회 정문을 비집고 경내로 난입해 국회 본관 계단 앞에 진을 쳤다. 때마침 휴가를 냈던 이용표 서울지방경찰청장은 급거 출근해 자리를 지켰다. 상황은 급하게 돌아갔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심재철 원내대표가 차례로 돌아가며 ‘응원부대’의 국회 진입에 환호했다. 이날 국회에 들이닥친 이들은 자유한국당 지지자들이다. 우리공화당 지지자 일부도 섞여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기자가 공부했고 기억하는 현대사 이래 국회 경내가 이날처럼 수천명의 특정 세력에 의해 점거됐고 국회 본관 건물 진입까지 시도해 충돌을 빚은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회 경계 100미터 이내의 집회는 불법이다. 국회 경내 집회는 당연히 불법이다. 경찰의 애매한 대응도 도마에 오른다. 국회 경내가 뚫리자 처음 영등포 경찰서는 ‘정당 연설회 참가는 합법’이라고 해명했다. 문제는 이들의 목적이 단순 정당 연설회 참가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수천명의 시위대들은 여당 중진 의원을 폭행해 안경이 날아갔고, 또다른 중진 의원에게는 욕설을 내뱉었다. 한 정당 인사는 그들이 뱉은 침을 맞았고 뺨을 맞았다. 기물은 파손됐다. ‘무법자’는 법을 무시하고 함부로 거칠고 험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일반 명사다.
태극기로 통칭되는 이들 세력의 폭력 사태는 그동안 현장에서 부지기수로 발생했다. 전광훈 목사가 종로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던 당일에는 경찰서 내에서 기자들을 폭행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당일 일부 기자들은 얼굴에서 피가 나는 상해를 입었다. 개천절 집회 당일에는 성추행 사건이 일어났다. 그들의 폭력성은 산발적이되 일관되게 나타난다. 그들은 반성치 않는다. 처벌이 없어서다. 또 ‘어르신들인데…’라며 맞은 이들이 그냥 넘어가기 때문이기도 하다.
경찰은 국회 난입 사태 후 기자들에게 “폭력행위, 집시법 위반, 퇴거불응 등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수사해 엄정 사법처리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경찰은 “미신고 집회에 대해 경찰의 수회에 걸친 해산명령에 불응해 집시법을 위반했으며 국회 관계자 등에 대한 폭력 행위가 있었는지도 면밀히 확인해 엄정하게 사법처리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경찰의 이같은 설명이 얼마나 실제로 이행될지 여부는 미지수다. 경찰은 청와대 사랑채 앞 시위에 대해서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말하듯 ‘우리가 이겼다’는 주장은 현재까지는 진실이다. 그들은 수와 폭력성으로 한국을 무법사회로 만들고 있다.
국회 경내 경호가 무너진 데엔 국회 내부에서 문을 열어준 측이 역할을 한 바 크다. 특정 보수 정당 관계자는 유인태 국회 사무총장에게 국회 정문을 열어달라고 강하게 요청과 항의했고, 이 때 열린 정문을 통해 대거 태극기 세력들이 국회로 쏟아들어져 왔다. 이날 사태에 대해 문희상 국회의장은 “있어서도 안될 일이 급기야 벌어졌다. 특정 세력의 지지자들이 국회를 유린하다시피 했다. 모욕적이다”고 했다. 무법자에게 필요한 것은 법대로 처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