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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플&스토리] “거대한 파고 직면한 한국차…글로벌 협력으로 돌파구”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 ‘정부-업계 가교役’
노동 유연성·규제 개선에 방점
졸속입법·과잉규제 바로잡기 최선
취임 1년을 맞은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이 내년 생산 효율화와 규제 개선에 팔을 걷는다. 전동화라는 거대한 변화의 파고 속에서 국내 완성차 업계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다. 이상섭 기자/babtong@

1960년대 산업화의 성공 이후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개화한 한국 자동차 산업이 내년에는 거대한 변화의 파고(波高)에 직면한다.

한국 자동차가 글로벌 시장의 변두리에서 전동화의 중심으로 이동하는 길목. 한국자동차산업협회(Korea Automobile Manufacturers association·이하 KAMA)가 경쟁력 강화와 규제의 조화를 강조하고 나섰다.

그 중심엔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정만기 회장이 있다. 올해 1월 KAMA 회장으로 취임한 그의 광폭 행보는 정적이었던 협회의 성격을 180도로 바꿨다. 매월 개최하는 포럼을 비롯해 미국, 인도, 독일 등 해외 자동차산업협회를 찾아 협력 강화의 토대를 마련한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 23일 서울 서초구 반포대로 자동차회관에서 만난 정 회장은 “노동 규제와 안전 규제, 여기에 글로벌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배출가스 규제까지 내년 자동차 산업의 경쟁은 더 심화할 것”이라며 “업계의 의견이 정부 의견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가교 역할에 충실해 업계의 부담을 덜어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양적 성장시대가 저물면서 내년에도 수요 둔화는 불가피하다. 선진시장은 물론 신흥국 간 협력의 고리를 강화해 공동의 목소리를 산업 전반에 전달하는 것이 KAMA의 중장기 전략이다.

▶경험이 키운 식견, 넓은 보폭을 만들다=취임 1년, 정 회장은 국내에 안주하지 않고 해외까지 보폭을 넓혔다. 가장 아래에 있는 협력업체부터 각국 자동차산업회의에서 제시한 요구와 기대를 업계에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정 회장은 “해외 협회와의 관계 형성이 생산과 기술 개발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협의체를 구성하고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우리 기업들이 현지에서 경영하는 과정에서 중앙정부 차원의 규제나 예기치 않은 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KAMA의 활동 영역이 넓어진 데는 그의 해외 경험이 토대가 됐다. 실제 파리 제10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딴 정 회장은 유학생 시절 경제학을 공부하며 유럽의 산업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다.

그는 “낭테르로 불리는 파리 제10대학교는 주류 경제학이 득세하지 않은 곳”이라며 “비주류 경제학과 제도주의 학파, 마르크스주의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경제 현상을 분석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이동수단은 르노의 ‘슈퍼 생크(Super Cinq)’라는 약칭의 소형 중고차 ‘르노 5’였다. 파리 외곽에 있는 숙소에서 학교까지 매일 두 시간 동안 운전대를 잡았다. 자동차에 큰 관심이 없던 때 현지 브라운관에서 만난 현대자동차의 광고는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높여준 일상의 작은 원동력이었다.

정 회장은 “유로 도입 전 르노 생크 중고차가 3만6000프랑이었는데 10만 프랑에 달하는 판매가의 현대차 소나타가 고급차로 보였다”면서 “한국에서 만든 차가 관련 산업을 선도하는 유럽을 달린다고 생각하니 괜히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고 추억했다.

1992년 프랑스행 비행기를 탔던 그는 3년 뒤인 1995년 귀국했다. 별을 보며 등교해 별을 보고 귀가하는 ‘바른 생활’은 1등이란 결실을 낳았다. 그는 “3년 만에 박사 학위를 딴 건 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일”이라며 웃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산 차는 현대차 ‘엑셀’이었다. 선택의 폭이 넓지 않았다. 도로를 채운 자동차가 다양하지 못했던 때였고, 수입차는 소시민이 넘볼 수 없을 정도의 값이었다.

정 회장은 산업자원부에서 견학차 방문한 일본에서 자동차 산업의 격차를 실감했다고 했다. 그는 “공항을 벗어나 일본 도로에 접어드니 같은 모델을 보기 힘들 정도로 많은 차종이 도로를 수놓고 있었다”며 운을 뗐다

이어 “이후 도요타와 포드를 비교해 학습할 기회가 있었는데, 다품종 유연 생산 체계를 갖추지 못했던 한국과 차이가 크다는 사실을 알았다”며 “자동차 산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시기였다”고 회상했다.

가난했다. 그래서 더 열심히 공부했다.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 파리 제10대학교에서 경제학을 다루면서 시야는 더 넓어졌다.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은 아직도 배우는 것이 즐겁다고 말했다. [이상섭 기자/babtong@]

▶배움은 인생의 전부…아직도 배고프다=그에게 일상은 ‘배움의 연속’이다. 현재까지 마땅한 취미가 없는 이유다. 공부하고 사람을 만나는 것이 하루의 전부다.

가난했던 환경적 요인이 첫 번째 이유다. 꼭 성공하겠다는 어린 시절의 포부가 꾸준한 학습과 경험의 욕구로 작용했다. 홀어머니와 서울로 이사를 온 중학교 2학년 때부터였다.

정 회장은 “서강대에 입학했지만, 군대를 전역하고 시험을 다시 치러 서울대학교 국민윤리교육학에 들어갔다”며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워 사립대를 다니기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했다.

학창 시절 소위 잘 사는 친구들에게 느낀 박탈감은 학구열을 불태우는 계기가 됐다. 서울대 입학 후 목표는 명확했다. 대학교 2학년 때 행정고시 1차에 이어 3학년 땐 2차 시험까지 붙었다. 공부하는 시간이 아까워 다른 관심사마저 두지 않았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행정직을 시작한 이후엔 대학생들을 공산권 국가에 데려가 연수를 진행하는 일을 맡았다. 베트남과 중국, 폴란드, 인도, 독일 등을 방문했다. 책으로만 봤던 나라들의 민낯은 학생들은 물론 그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는 “공산권 국가들이 무너지고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하는 시기에 목도한 다양한 국가별 상황은 많은 교훈을 가져다줬다”며 “무역 흑자가 꾸준히 늘다가 적자로 돌아서던 당시 나라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산업자원부 산업기술개발과를 거쳐 2004년 9월부터는 대통령비서실 경제보좌관실을 경험했다. 산업자원부 산업정책관으로 돌아온 2년 뒤엔 지식경제부로 자리를 옮겼다. 2014년엔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실 산업통상자원비서관을, 2016년부터 2017년까진 산업통상자원부 제1차관을 지냈다.

그는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면서 인사 청탁이나 절차 간소화 등 일부 부적절한 단면을 경험하기도 했다”며 “절차와 규정을 준수하는 ‘작지만 중대한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시간이었다”고 토로했다.

KAMA의 수장을 맡게 된 계기는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그는 업계의 부탁이 없었다면 먼발치서 자동차 산업을 바라만 봤을 것이라고 했다. 정 회장은 “청와대에 이어 1차관을 지낸 이후 업계의 요청이 잇따랐다”며 “대외 활동부터 공직생활에서 했던 활동들을 눈여겨본 업계 분들이 산업 발전에 힘을 보태 달라는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말했다.

협회의 역할은 정부와 기업, 그리고 협력업체 등 다양한 생태계의 구성요소를 한 데 묶는 데 있다.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은 앞으로 열리는 발전포럼에도 노동조합 관계자들을 불러 현장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이상섭 기자/babtong@]

▶터널의 끝은 창대하게…목소리를 키우다=KAMA 회장직을 맡자마자 도전의 연속이었다. 국내 자동차 업계가 쪼그라든데다 전망마저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GM 군산공장이 문을 닫고 도산한 부품업체들이 많은데 글로벌 생산국 순위까지 5등에서 7등으로 떨어졌다”며 “국내 완성차 업체들의 영업이익이 적자로 돌아서고, 수출은 물론 협력업체까지 위기감이 번지면서 막막한 심정으로 출발했다”고 떠올렸다.

1년간 소회를 묻자 정 회장은 자동차 산업이 연초 부임할 때보다 많이 좋아진 것이 작은 위안이라고 했다. 중국시장의 둔화와 글로벌 완성차 판매량이 약 5% 감소한 반면, 국내 완성차 업체의 감소 폭이 1~2%에 그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시장은 갈수록 안 좋아질 텐데 미래 자동차에 대한 대비를 위한 R&D와 노사 관계 정립 등 다양한 과제가 수면 위로 떠오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서다.

내년 역점을 두는 부분은 ‘노동 유연성’과 ‘규제 개선’이다. 완성차 노동조합 관계자들을 KAMA 포럼에 초청하고 발언 기회를 늘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 입법의 증가 추세가 졸속입법과 과잉규제로 이어지는 현상을 지적하고 이를 바로잡기 위한 목소리도 키우고 있다.

그는 “한국의 입법 건수는 연간 1700여 건으로 미국 210건, 일본 84건, 영국 36건 등 주요 국가와 비교해 과도하게 많다”고 경계하며 “노동 유연성을 악화시켜 업체의 부담을 키우는 친(親)노동정책의 역효과와 환경·안전규제 등 실무적으로 논의해야 할 주제들을 내년에도 포럼 안건으로 올릴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의 세제지원 수준은 투자액 대비 0~2% 수준으로 프랑스 30%, 일본 6~14% 등 차이가 심하다”며 “연구개발 여력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기업들은 고부가 가치 모델을 개발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찬수 기자/and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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