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으로 경기펌핑 탈피 민간역할 확대
표심 의식한 ‘경제의 정치화’ 경계
복지지출 확대 불가피…속도 조절해야
주52시간제 도입·최저임금 인상 등
소통없이 일방 추진 ‘피드백’도 없어
부동산도 시장임을 인정해야 해법 나와
혁명적 규제개혁…네거티브 방식 전환을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헤럴드경제와의 신년 대담에서 한국경제가 ‘퍼펙트스톰’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하고, 한국경제의 회생을 위해 반시장, 반기업 정책을 혁명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상섭 기자 |
[대담 : 최상현 산업부장] 윤증현(73)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새해 한국 경제가 ‘퍼펙트 스톰(크고 작은 악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에 직면했다고 우려했다. 특히 4월 총선을 앞두고 경제가 정치화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표심을 잡기 위한 현금성 복지예산 살포는 재정건전성을 악화시킬 뿐 아니라 결국 자유주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말한 국민이 정부에 의존하는 ‘노예의 길’로 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달 26일 서울 여의도 尹(윤)경제연구소에서 2시간 가량 진행된 헤럴드경제와의 신년 대담에서 윤 전 장관은 규제와 노조문제에 대해 언급하면서 수차례 탁자를 치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또 부동산 정책과 교육정책이 엇박자를 내고 있는 것에 대해 부처간 조율 프로세스가 없다고 강도높게 질타했다. 월성 1호기 원전 폐쇄 후폭풍과 관련해서는 정치권이 추천한 비전문가들이 배임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 전 장관은 노무현 정부에서 금융감독원장(2004년)을, 이명박 정부에서 기획재정부 장관(2009년)을 지낸 정통 경제 전문가다. 지난 3~4년간은 교육개혁위원회를 꾸리고 인재포럼의 좌장을 맡는 등 교육에도 각별한 관심을 가져왔다. 그는 인터뷰 내내 한국 경제가 회생하기 위해서는 “반시장, 반기업 정책을 혁명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새해 한국 경제 어떻게 보나.
▶매우 암울하다. 한국 경제는 수출 중심 경제인데 수출이 12개월째 하락하고 있다. 수출 감소 원인은 전 세계가 호황의 끝자락, 성장세 둔화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 4대 축인 미국, 유럽, 중국, 일본 경제가 모두 안좋아 내년에도 한국 수출 감소는 이어질 것이다. 내수도 투자와 소비 모두 부진하다. 투자 주체인 기업이 투자에 전념할 환경이 아니다. 더 심각한 것은 잠재성장률이 계속 하락하는 것이다. 출산율도 최악이고 현 정부가 강조하는 불평등 문제도 악화하고 있다. 고용도 질을 봐야 하는데 노인 중심 단기 일자리만 늘었다. 총체적으로 수출과 내수, 대내외 여건이 나쁘고 정책 패러다임별로 봐도 제대로 되고 있는 것이 없다.
-한국 경제가 ‘퍼펙트 스톰’에 직면했다고 했는데 과거 IMF, 리먼사태와 비교할 때 어떤가.
▶직접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다. IMF는 외환부족이 초래했다. 당시 민간기업이 고속성장하며 평균 부채가 400%를 넘었다. 여기에 외환문제가 목줄을 쥐니까 지급 불능 상태에 빠진 것이다. 새해 경제가 암울하다고 해도 그보다는 덜할 것이다. 다만 걱정이 되는 것은 재정파탄이다. 새해 슈퍼예산 512조원을 확정하는 등 현 정부 들어 3년 연속 경상성장률의 두배 이상인 10%씩 예산을 늘리고 있다. 재정위기는 국가신인도에 타격을 준다. 국가신인도가 하락해서 외환 유출이 일어나면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에 엄청난 악영향을 준다.
-새해 한국 경제 부담 요인을 꼽는다면?
▶수출감소, 경제의 정치화, 경제출구 부재, 부동산까지 4대 리스크다.
수출 감소에 대비해 정부는 환율변동, 외환관리 등 대외균형 유지책을 세워야 한다. 수출 품목·지역 다변화와 함께 외환 부족에 대비해 일본, 미국 등과 통화 스와프를 부활시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경제의 정치화도 경계해야 한다. 총선 표를 의식한 팽창예산으로 새해 예산의 60조원을 국채로 충당한다. 자원낭비가 심한 선거를 매년 따로 할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해야 한다.
경제 출구도 안보인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신성장동력 확보는 커녕 기존 기업 경쟁력은 떨어지고 퇴출돼야 할 한계기업은 각종 지원으로 연명하고 있다. 대표격이 ‘타다금지법’이다. 규제혁신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부동산 시장이다. 어떻게 안정을 되찾을지 우려가 크다.
-미중 무역분쟁 관련 최근 1단계 합의가 있었다. 완전한 합의는 아닌데 어떻게 전망하나.
▶미중문제는 기본적으로 패권경쟁이다.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 밑바탕이 기술력이다. 미국이 중국의 기술 발전을 늦추려고 관세를 들고 나왔지만, 이는 환율과 직결된다. 미국은 환율을 시장기능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중국과 독일은 환율은 주권문제로 본다. 미중 무역분쟁은 환율문제로까지 비화할 수 있다.
-정부가 내세운 올해 2.4% 경제성장률이 장밋빛이란 비판이 나온다. 확장재정정책이 과연 맞는 방향인가?
▶ 자본주의 시장에서 재정의 기본적인 역할은 마중물에서 그쳐야 한다. 언제까지 국민 세금으로 경기를 펌핑(Pumping)할 것인가. 펌핑은 민간에서 해야 하는데 기업이 투자할 여건이 안된다. 땅값, 인건비, 노조 등 부담이 크다. 정부의 새해 100조원 투자계획도 공공부문이 많다.
확장 재정의 용처도 중요하다. 현금성 복지예산만 54조원이다. 복지지출의 3원칙, 즉 자활의지를 제고하는 생산적 복지,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주는 맞춤형 복지, 한번 주면 다시는 못 돌리는 지속가능 복지를 준수해야 한다.
-현 정부의 지출을 포퓰리즘적(인기영합주의) 복지 지출로 볼 수 있나.
▶그렇다. 경제성장의 궁극적인 목표는 국민 삶의 질과 수준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복지지출 확대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문제는 역사적 배경과 경제발전 속도 그리고 폭이다. 한국의 복지지출 증가 속도는 유례없이 빠르고 폭도 넓다. 지난 정부까지 조세 부담률은 17~18%를 유지했지만 현 정부 들어 지난 3년간 20%가 넘었다. 종부세·보유세 등을 급격히 올리면서 과세 대상자들의 비명이 나오고 있다.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 어느 정도의 속도와 폭으로 할 것인지, 지원대상과 용처에 대한 논의가 계속 돼야 한다.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이나 주 52시간 근로제에서 입장 변화를 보이고 있는데 조언을 한다면?
▶조세 부담의 원천은 기업이다.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은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저녁이 있는 삶’보다 ‘먹을 게 있는 삶’이 중요하다. 일할 권리까지 뺏으면 안된다. 기업·업종·규모에 따라 다 달라서 기업에 맡겨야 한다.
-경제 허리인 40대 일자리에 진전이 없다. 고용대책 어디서부터 잘못 됐나.
▶기본적으로 문재인 정부가 새겨들어야 할 것은 ‘새겨들을 생각을 안한다는 것’이다. 주52시간, 최저임금 인상 논란이 컸지만 상호 소통이 없다. 정부 정책은 반드시 피드백을 해야 한다. 현 정부는 말로만 그러겠다고 하지 땜질 처방에 그치고 있다. 특히 일거리와 일자리를 혼동해서는 안된다. 공무원을 늘리는 것은 공공부문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지 일거리가 느는 것은 아니다. 공공부문 일자리는 연금까지 전부 국민에 부담을 지우는 것이어서 함부로 올리면 안된다. 그래서 작은 정부로 가야 한다.
-경제단체가 반시장 정책에 대해 시정을 요구하지만 나아지지 않고 있다. 기업은 절망상태에 빠졌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현 정부는 기업 본질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것 같다. 정체성 문제다. 정부 구성원들이 대부분 운동권 출신이어서 기업이 얼마나 큰 리스크를 안고 세계 시장에서 피나게 싸우는지, 얼마나 고민하고 고뇌하는지 이해가 없다.
세계 각국이 기업 유치를 위해 경쟁을 하고 있지만 우리 정부는 거꾸로 가고 있다. 가업상속세율 최대 65%, 협력이익공유제, 법인세 인상과 같은 말도 안되는 정책을 펴고 있다.
-현 정부들어 18번째 부동산 대책이 나왔다. 15억원 이상 아파트 대출 금지 등 고강도 조치가 실효성이 있을까.
▶부동산 문제는 역대 모든 정부의 ‘아킬레스 건’이다. 올라도, 내려도 문제다. 현 정부에서 부동산 정책이 18번 나왔다면 두 달에 한번도 더 냈다는 것이다. 특히 15억원 이상 아파트 대출 금지는 헌법 위반이다. 국민의 재산권 침해다. 작년 종부세도 1.9조원에서 3조원으로 절반도 아닌 58% 올렸다. 이러면 조세 저항이 크고 양도소득세까지 높아 전세값만 폭등한다. 정부는 부동산도 시장이라는 것을 인정해줘야 한다. 세금, 규제, 대출로 수요 억제에만 집중하고 공급대책은 찾아볼 수 없다.
-조국 사태 이후 대입제도를 바꾸면서 부동산 시장에도 영향을 주고 있는데 어떻게 보나.
▶제일 중요한 것이 교육정책이다. 전국 지역별로 흩어진 특목고·자사고를 없애겠다고 하니 강남 8학군, 학원 밀집지역으로 몰리면서 강남 집값이 폭등한다. 부처간 조율이 반드시 필요하다. 교육부에서 이런 정책을 내놓으면 국토부에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이런 프로세스가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과의 대화에서 ‘부동산 문제는 자신있다’고 했는데 누가 이런 인식을 심어줬는지 의문이 든다.
- 4차 산업혁명으로 신산업 육성을 얘기하지만 ‘타다 금지법’ ‘데이터 3법’ 등 모두 규제에 가로막혀 있다. 돌파구는 없나.
▶ 4차 산업혁명이 물밀 듯 밀려오는데 우리 기업 환경은 어제, 오늘, 내일이 변할 것 같지 않다. 기업들은 무기력증에 걸렸다. ‘타다 금지법’만 봐도 택시 기사만 국민인가, 시간에 쫓겨 타다를 이용하는 소비자들은 국민 아닌가. 금산분리법으로 인터넷뱅크도 안되고 수도권 규제한다고 공장도 못 짓게 한다.
‘혁명적 개혁’을 해야 한다. 세상이 변하고 기술이 발전하면 법으로 규제할 수 없는 예상 밖 일이 계속 생긴다. 포지티브에서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 해서는 안되는 것만 정해놓고 그 외에 다 할 수 있게끔 완전히 바꿔야 한다. 법, 제도, 관행을 혁명적으로 바꿔야 한다.
-미세먼지 기승, 원전 폐쇄 등 환경·에너지 대책 논란도 커지고 있다.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환경개선은 필수적이다. 미세먼지는 중국에서 오는 게 많은데 중국에 제대로 항의도 못하고 있다. 싱가포르-인도네시아, 독일-영국의 개선 사례가 있는 것처럼 우리도 중국에 할 말은 해야 한다.
월성 1호기에 대해서는 감사원이 현재 경제성 평가를 감사 중인데 갑자기 안건이 올라와 폐기 결정을 내렸다. 7000억원 세금 들여 수리하고 수명이 3년이나 남았는데 영구정지를 강행했다.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들을 왜 정치권에서 추천하는지 모르겠다. 민주당 추천 3명이 그같은 결정을 내렸다. 배임이다. 원전은 이산화탄소 배출이 없어 친환경적이고 효율성도 높다. 에너지 정책도 전면적으로 수정해야 한다.
-일본 수출규제 완화 조짐이 일지만 기본적으로 아베 정부의 입장은 변함없다. 어떻게 풀어야 하나.
▶한국과 일본의 갈등은 국제분업체계를 깨는 것이다. 일본의 수출 규제 배경은 공식적으로는 안보상 이유지만, 근본 원인은 강제징용 배상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대법원 판결에 관여 못한다고 하지만, 외국에서 보면 대법원도 한국 정부다. 앞으로 이 사태가 계속되면 대한민국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라가 돼 버린다.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한일관계에서 도덕적 우위를 점했는데 이번 사안은 한국에 문제가 있다. 한국 정부가 빨리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해결하고 청구권 협정을 지키겠다고 약속해줘야 한다. 정부가 소재·부품·장비를 키우겠다고 하지만 어느 나라나 어느 때나 자원은 유한하다. 국제 분업체계를 되살리는 것이 윈윈하는 것이다. 우리가 먼저 풀어가야 한다. 정리=천예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