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소련은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호를 발사했다. 농업국가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여겨진 소련이 이론에서나 가능할 법했던 인공위성을 실제로 쏘아올린 사건에 미국은 충격에 빠졌다. 21세기, 미국은 또 다른 스푸트니크의 출현을 막기 위해 출구 없는 싸움을 시작한 듯하다.
매년 1월 초만 되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전 세계 신기술 각축장이 열린다. 세계 최대 전자·IT 전시회인 CES가 바로 그 장이다. 기술을 선도하는 세계 유명기업의 수장들이 총출동해 미래를 구상하고,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새로운 기술들이 발표되는 곳이다.
CES에는 전 세계 4000여개사가 참석했는데 그 중 중국은 최다 업체 참가국으로 전체 30% 이상을 차지한다. “CES가 중국 IT기업의 전시장으로 변했다”라고 평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런데 작년부터 중국기업이 확 줄었다. ‘18년도에는 1500개사까지 참가했던 중국이 2019년도에는 1200여개사로 대폭 감소했고 올해 1000여개사까지 감소했다고 한다. 작년에 기조연설 무대에 오르는 중국기업가는 전무했고 올해도 마찬가지다. 2018년도부터 본격화된 미중무역전쟁의 여파가 라스베이거스의 한 전시장에 그대로 전달된 셈이다.
미국의 대중무역적자로 인해 발발한 미중무역전의 화마가 기술패권 경쟁으로 불붙은 듯하다. 2019년 12월 14일, 중국은 500억 달러의 미국산 농산물을 구매해주고 미국은 추가 관세를 부과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휴전에 들어갔지만 산업보조금 중단, 지재권 보호 및 강제이술 이전 금지 등 양국이 물러서기 힘든 쟁점들이 놓여있어 난항이 예상된다.
미국은 궁극적으로 중국의 ‘중국제조 2025’ 전략을 포기시키고자 하지만 ‘기술굴기’로 ‘과학기술 사회주의국가’를 지향하는 중국이 이를 순순히 받아들일 리 없을 것이다. 미중간 기술을 둘러싼 신(新)냉전의 대서막이 열린 것이다.
기술 패권을 둘러싼 미·중간의 갈등은 여러 이웃 국가에 피로감을 선사할 것이다. 작년 중국 상하이에서 개최된 ‘CES 아시아’에서 이미 한차례의 피로감을 느낄 수 있었다. 중국 화웨이를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의 다툼이 격해지는 분위기 속에서 우리 기업들이 미중 양국을 의식해 참가가 눈에 띄게 감소한 것이다.
국내 통신사와 스마트폰기업이 대거 참가하곤 하는 MWC 상하이에도 한국기업의 참여가 저조했다. 전시회의 스폰서가 무역 분쟁의 트리거, 화웨이인 점이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이 두 전시회는 중국이 자국의 첨단 기술을 과시하는 장이다.
미국과 중국의 눈치를 보는 나라는 한국 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주독중국대사는 “독일이 화웨이를 배제하는 결정을 내린다면 중국정부는 가만있지 않을 것”라며 으름장을 놨다. 독일 5G 네트워크 공급자 선정에 화웨이를 포함시키라는 압박이다. 화웨이는 세계 5G를 주도하고 있는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로 미국은 안보를 이유로 동맹국에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지 말 것을 요구해오고 있다.
21세기에도 스푸트니크와 아폴로는 발사될 것이다. 그러나 냉전시기의 기술전은 전세계 산업이 사슬처럼 얽혀있는 현재와는 그 온도의 차이가 자못 클 것이다. 미중이 기술을 두고 불꽃 튀게 싸우며 열을 올릴 때 전자레인지 속 팝콘처럼 이리저리 튀어 다니며 기존의 사슬이 끊겨지는 경험을 할 수밖에 없는 경제체가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CES 개막 하루 전날, 스푸트니크를 떠올려보게 된 이유다. 참, 스푸트니크는 러시아어로 “여행의 동반자”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