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로 제 21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100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총선은 우리 정치사에 여러 각별한 의미를 던진다. 먼저 박근혜 탄핵으로 한국 사회 진보-보수의 전통적인 이념지형과 판도가 바뀐 상황에서 치러지는 첫 총선이다.문재인 정부의 집권 후반기 성패를 가를 중대 계기이기도 하다. 또 유력 차기 대권 주자들의 포석과 승부수가 난무할 ‘대선 전초전’이다.
진보 혹은 범여 지지자들에게 이번 총선은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는 개혁의 속도와 방향, 내용에 대한 심판이 될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 대선 때 문 대통령을 선택했던, 중도보수에서 범진보에 이르는 광범한 이념적 스펙트럼의 유권자들 중 이탈자를 얼마나 막을 것이냐가 여당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보수 야권 지지자들에겐 자유한국당이 진영의 리더이자 대안 집권세력으로서 가치와 능력을 보여줬는지가 가장 중요한 평가 근거가 될 것이다. 한국당으로선 전(前) 정권의 국정농단과 대통령 탄핵으로 인해 대열에서 이탈했던 보수 유권자들을 ‘귀환’시키는 것이 당면목표일 것이다.
둘 모두에 좋은 말을 하긴 어렵다. 정부의 개혁은 오른쪽에서 보기에도, 왼쪽에서 보기에도 성공이라고 말하기엔 민망하다. 여야 협치에도 실패했고, 과감하고 단호한 개혁도 못했다. 그렇다고 한국당과 보수 진영은 새로운 가치를 보여줬을까? 무색하긴 여당과 오십보백보다. 주장은 낡았고 조직은 지리멸렬했다. 지난 총선과 대선을 돌이켜보면 민주당은 대체로 현상유지, 한국당은 하락세 경향이다. 19대(2012년)와20대 총선(2016년)의 의석 점유율, 19대 대통령선거(2017년)의 득표율을 차례로 놓으면 민주당은 42%(민주통합당)→37%→41%(문재인)였다. 한국당은 51%→41%(이상 새누리당)→24%(홍준표)였다. 이번 총선은 탄핵이라는 변수가 사라진 상황에서 우리 사회 진보-보수의 ‘지분’을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전통적 좌우 이념으로 포괄되지 않는 새로운 시대적 변수도 이번 총선에선 주목할 바다. 세대와 성, 그리고 부동산·교육 문제다. 영어로는 A(age)·G(gender)·E(estate·education)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기성세대를 불신하고, 공정·정의에 민감하며, 좌우 이념에서 자유로운 젊은 20~30대와, 정치적으로는 대체로 진보 경향이나 경제·문화적으로는 보수적인 40~50대, 극보수 성향이 가장 많이 분포하고 투표율도 높은 60대 이상의 성향이 뚜렷하게 표로 갈릴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번 총선은 ‘미투’ 운동의 대중적 확산 후 처음 맞는 총선이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교육 정책에 대한 선호도와 비판 역시 총선의 주요 이슈 중 하나가 될 전망이다. 그래서 이번 총선은 기존 좌우 이념이 포괄하지 못한, 그러나 한국 사회가 해결해야 할 다양한 세대와 성, 경제·교육적 의제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논의될 기회다. 다만, 두 거대 여야가 그 가능성을 좁힌 것은 아쉽다. 반쪽짜리가 된 선거법 때문이다. 현정부와 여당의 개혁 가치에는 동의하지만 정책에는 비판적인 유권자, 보수 지향이지만 한국당의 리더십엔 실망한 유권자들에겐 여전히 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 그래도 이제까지의 선거사를 보면 결국 ‘새 판’을 만든 것은 유권자들이었다. 총선 D-100, 정치권의 출사표보다 유권자의 다짐이 더 중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