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체들 배터리 불안감 확산 우려 속 자체 안전대책 마련 등 적극 대응
[헤럴드경제 유재훈 기자] 정부가 ESS(에너지저장장치) 화재사고 원인을 사실상 ‘배터리 결함’으로 내부 결론 지은 것으로 확인됐다. 최종 조사 결과는 이르면 23일께 나온다.
이에 따라 글로벌 ESS 배터리 시장 점유율 8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국내 제조업체들은 물론 PCS(전력변환장치), EMS(ESS 운영·관리 소프트웨어) 등 연관산업에 미칠 타격도 만만찮을 것으로 예상된다.
2차 ESS 민관합동 조사위원회는 이같은 결론을 담은 보고서를 이르면 23일, 늦어도 이달 중 발표한다는 입장이다.
▶‘배터리 결함’ 1차 조사위 때와 달라진 결론=조사위는 지난 15일 서울 모처에서 회의를 갖고 사고 원인 결과를 놓고 토론을 벌였다.
조사위는 지난 연말 배터리 문제로 잠정 결론 지어졌다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 이를 부인해왔다. 하지만 조사위 내부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최종 보고서에는 사고 원인은 배터리 문제쪽으로 의견이 모아진 것으로 보인다.
2차 조사위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배터리 문제가 상당부분 최종 결과 보고서에 그대로 담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다만 조사위는 ‘배터리의 결함이 제조 과정에서의 문제인지, ESS 사이트에 배터리를 설치, 운영하는 과정에서의 문제인지를 재차 검증하기로 했다. 조사위는 이 과정을 거쳐 설 연휴 전 다시 회의를 갖고 추가 검증 결과를 포함한 최종 보고서를 적어도 이달 중 내놓을 계획이다.
조사위의 이 같은 내부 결론은 화재사고의 원인으로 배터리 자체의 결함보다는 보호,운영,관리상의 문제를 더 주요하게 봤던 1차 조사 결과와 크게 차이를 보인다.
1차 조사위는 지난해 6월 화재사고 원인 조사 결과 발표에서 ▷배터리시스템 결함 ▷전기적 충격 요인에 대한 보호체계 미흡 ▷운용환경관리 미흡 및 설치 부주의 ▷ESS 통합관리체계 부재 등 4가지 요인을 화재 원인으로 추정한 바 있다.
일각에선 2차 조사위가 1차 때와 달리 사고 현장의 화재 배터리와 관련 데이터들을 충분히 확보해 결론이 달라진 것으로 보고 있다.
조원일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박사는 “지난 1차 조사위에선 화재현장 관리가 잘 안돼 발화점 시료 등을 많이 확보하기 힘들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2차 조사위는 화재 원인을 유추할만한 근거를 충분히 확보해 배터리 결함으로 결론짓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울산광역시의 한 ESS 사이트에서 화재가 발생한 모습.[연합] |
▶‘화재 주범’ 몰린 배터리 업계 긴장=조사위의 이 같은 내부결론 방침에 배터리 제조업체들은 초비상이 걸렸다.
자칫 배터리가 ESS 화재사고의 핵심 원인으로 낙인 찍힐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국내와 동일한 배터리를 탑재하는 해외 ESS 사이트에선 화재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국내 화재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부의 안전 대책과 별개로 업체들이 자체적으로 안전성 강화 방안을 수립해 이를 실행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배터리를 둘러싼 불안감만 커지는 점이 아쉽다는 입장이다.
삼성SDI는 지난 10월 국내에 설치된 ESS 전 사이트를 대상으로 외부충격 안전장치 설치, 충격여부 확인 센서 부착, 설치 시공업체 정기 교육 등을 실시하는 안전성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또 ESS 배터리에 발화 현상 발생 시 이를 차단하는 특수 소화시스템을 신규 판매되는 배터리에 전면 도입하고, 이미 설치된 국내 모든 사이트에도 이를 적용한다고 밝혔다. 이에 소요되는 2000억원 가량의 비용은 모두 삼성SDI가 부담하기로 했다.
LG화학 역시 사고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 화재확산 방지 기술이 적용된 배터리 제품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또 사고가 잇따랐던 2017년 중국 난징 공장산 배터리가 탑재된 사이트는 충전량을 70%로 제한하고, 이로 인한 ESS 운영업체의 손실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업체 관계자는 “배터리의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국내 ESS 시장은 사실상 고사상태에 들어섰다”며 “글로벌 경쟁사들이 해외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업체들의 설 자리가 줄어들까 걱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