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재벌 봐주기 논란’ 의식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달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 |
오는 14일로 예정돼 있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공판 준비기일이 재판을 일주일 앞두고 돌연 연기되면서 배경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공판 기일의 갑작스런 연기에 대해 재계 일각에서는 재판부의 판단에 외부 정치 변수가 작용해 삼권분립 원칙이 압박받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아울러 신종코로나바이러스 등으로 경영 상 악재가 중첩되는 가운데 재판의 장기화가 재계 1위 기업에 불확실성을 더할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재판 전개 과정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정준영 부장판사)는 오는 14일 열릴 예정이었던 이 부회장의 공판준비기일을 변경하면서 특검과 이 부회장 양측에 준법감시위원회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하라고 요청했다.
재판부는 준법감시제도 취지 전반에 대한 의견은 물론, 준법감시제도가 양형 사유에 해당하는지, 해당하지 않는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준법감시위원회의 운영 상황을 점검할 전문 심리위원 제도가 부적절하다는 특검의 의견에 대한 이 부회장 측의 반론 등을 요청했다.
예상치 못한 재판부의 갑작스런 재판 기일 변경은 이례적인 판단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준법감시위원회의 설치 여부가 뒤늦게 재판의 일정을 변경할 변수로 작용하고 있는 데 대한 우려의 시선이 제기되고 있다. 준법감시위는 지난달 9일 설치 여부가 공식적으로 발표됐고, 이에 대해 재판부는 지난달 17일 “준법감시제도가 실효적으로 운영되면 양형조건으로 고려할 수 있다”며 “피고인과 삼성의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는지 형사소송법상 전문심리위원 제도를 통해 점검하겠다”고 밝힌 바 있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서는 정치권과 시민단체 등에서 준법감시위원회가 ‘재벌 봐주기’ 비판을 쏟아낸 점이 재판 일정의 변경에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법조인들은 특히 입법부의 국회의원들이 공식적으로 재판부에 의견을 내는 데 대해 삼권분립의 훼손 여지가 크다고 우려한다. 실제 그동안 정치권에서 재판 선고가 나온 이후에 그 결과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발표하는 경우는 많았지만, 이번처럼 재판 진행 중에 사법부를 압박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 사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번 재판 기일 변경 이후의 전개 상황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연초부터 이어진 중동 불안과 신종코로나바이러스 등으로 경영상 악재 변수가 작용하는 가운데 재판의 장기화에 따른 불확실성이 한층 높아지면 경제 전반에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재판부의 이번 연기 결정은 ‘재벌 봐주기’ 논란을 의식해 보다 신중한 절차를 밟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으로 보여진다”면서도 “그러나 ‘나무’를 보는 검찰과 일부 정치권, 시민단체 의견보다는 수십년간 이어져온 한국 정치권력과 기업의 관계성, 경제계 전반의 상황, 향후 한국 정치-기업 관계성 제도개선 방향까지 ‘숲’을 보는 재판부의 판단이 필요할 때”라고 말했다.
정순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