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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활형 검사’서 ‘생활형 정치인’으로…김웅의 ‘정치내전’ [피플앤스토리]
검사면접 과정서 왜 지원했느냐는 질문에
“성적 된다고 해서” 솔직답변 지금도 회자
부당함 못참는 성격…애정 있으니 비판도
‘검사내전’, 전문직 소개용 원고가 씨앗
국민에 희망 주겠다는 허황된 의제 대신
제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할 것
그것이 지금은 권력기관 분산이 아닐까
김웅 전 부장검사. 이상섭 기자/babtong@

“인생에서 계획을 세워본 적은 별로 없다. 또 계획대로 되는 것도 아니더라”

자칭 ‘생활형 검사’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김웅 전 부장검사가 되돌아본 자신의 인생이다. 사법고시를 도전한 것도, 또 검사 조직에 발을 들여논 것도, 심지어 정치인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것도 그때그때 우연일 뿐이라는 말이다.

김 전 검사는 요즘 국회에서 가장 주목받는 정치 신인이다. 베스트셀러 ‘검사내전’의 작가로, 정부 검찰개혁에 반발한 법조인 출신 국회의원 도전자로 이목을 끌고 있다.

지난 2일 서울 송파구에 있는 선거사무소에서 김 전 검사와 만났다.

檢 시절 별명은 ‘당청꼴찌’…“계획 없는 삶”

김 전 부장검사의 말 곳곳에선 지금도 검찰 조직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그래서 “원래는 검사가 꿈이 아니었다는 데 진짜예요?”라고 농담조로 물어보니 웃으면서 그렇다고 한다. 그는 “살면서 계획을 세워본 적이 없다”면서 긴말을 이어간다.

김 전 검사는 청년 시절의 자신은 ‘백수건달’이었다고 회상했다. 허구한 날 친구들과 모여 운동이나 하는 게 소일거리였다. 어느 날, 그런 그에게 판사가 된 친구가 와서 귀띔했다. “웅아, 사법고시는 대학 학점을 안 본대. 또 합격만 하면 어디든 취직할 수 있대.” 김 전 검사는 이 한 마디에 ‘괜찮겠다’고 판단, 그 친구의 책을 빌려 공부를 시작했다.

“고시를 생각보다 아주 잘 쳤어요. 그런데 연수원에 가선 공부를 안 했더니 성적이 엄청나게 떨어졌습니다. 그래도 변호사는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죠. 그런데 1998~1999년 때 외환위기 여파로 경기가 무척 나빴어요. 로펌도 사람을 뽑지 않았지요. 고시 성적이 연수원 때의 낮은 성적을 만회해주고, 이런 때 불경기가 닥쳐와 검찰직을 맡게 됐습니다.”

김 전 검사의 당시 면접 일화는 지금도 알음알음 돌고 있다. 그는 면접관이 “왜 검찰을 지원했느냐”는 물음에 “성적이 된다고 해 지원했다”고 짧게 답했다고 한다. 바로 앞 지원자가 정의 구현과 공정 실현 등 사명감에 가득 찬 말을 쏟아낸 후였다. 면접관이 그의 솔직함을 높게 사지 않았다면, 그는 또 다른 길을 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초기 제 별명은 ‘당청(當廳)꼴찌’였어요. 그래도 일을 못 한다는 말은 듣기가 싫었어요. 열심히 하다 보니 지청, 중앙지검, 법무부 등을 돌게 됐죠. 좋은 선·후배를 많이 만났습니다. 특히 제가 볼 때 부당한 데 대해 ‘들이받는’ 일을 몇 번 해서인지 후배들이 저를 간부와 싸워줄 수 있는 선배, 힘든 일을 허심탄회하게 말할 수 있는 선배로 봐줬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어찌 보면 김 전 검사는 단지 성적에 맞춰 일을 시작했을 뿐이었다. 검찰 조직은 어느 순간 그를 품어줬다. 삶을 가르치고 보람과 성취감을 줬다. 좋은 사람들도 알게 됐다. 그는 “많은 것을 얻었다”고 표현했다. 검찰 조직에 남다른 애정을 갖는 것은 이런 배경 때문으로도 읽힌다.

당청 꼴찌에서 에이스 검사까지

우연에 우연으로 검사가 됐지만, ‘당청(當廳)꼴찌’라는 별명은 결코 반가운 것만은 아니다. 자신의 일에 대한 흥미, 그리고 노력은 결국 그를 에이스 검사로 만들었다.

김 전 부장검사는 “나가더라도 일을 너무 못해서 나갔단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며 “그래서 열심히 하다보니 지청으로 가게됐고, 또 거기서 부장이랑 선배들이랑 잘 맞아 일 하다보니 갑자기 상장이나 표창장도 많이 주고, 그러다 갑자기 중앙지검으로 덜컥 가게 되더라”라고 탄력받은 중견 검사 시절을 회상했다.

우연으로 선택한 검사직이 그에게 천직이 되는 순간이다. 김 전 부장검사는 “중앙지검으로 가니 동기중에서도 잘 나가게 된다 싶더라”며 “또 있으니까 중앙지검 검사도 한 번 해보고 가자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이후 법무부로 가서 또 다른 조직 분위기에 좌절도 맛보고, 이후 지방지청으로 내려가기도 했다. 하지만 그 곳이 바로 그의 인생을 또 한번 바꾼 소설과 드라마 ‘검사내전’의 무대인 것은 또 다른 우연이기도 했다.

김 전 부장검사는 “좌천성으로 지방으로 날아갔는데, 막상 날아가니 좌천당했다고 사표를 쓰기에는 후배들 보기가 부끄럽더라”며 “그래서 다시 시작했고 그러다보니 20년이 됐더라”고 미소 지었다.

김웅 전 부장검사. 이상섭 기자/babtong@

무협지 같다던 원고, ‘검사내전’ 탄생

“책 ‘검사내전’이요? 이 또한 처음부터 책을 내겠다는 계획을 갖고 쓴 것은 아니었습니다.”

김 전 검사의 ‘검사내전’ 씨앗 원고는 그가 2015년 광주지검 해남지청장을 할 때부터 쓰였다. 그는 법조인 등 전문직을 소개하는 출판사를 언급했다. 검찰 분야의 원고를 요청받았을 때, 그는 지방에 있어 일이 많지 않아 보인다는 점 때문에 집필자로 뽑혔다고 한다.

“쓰라고 하니 써서 보냈지요. 그런데 출판사에서 연락이 오길, 무슨 무협지 같은 내용이 나왔다고 말하더라고요. 다행히 글이 재밌다고, 좀 더 써서 단행본으로 내놓으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습니다. 이를 본 한 선배가 ‘검찰의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줘라’고 격려했죠. 이때가 ‘검사내전’을 생각한 첫 시점이었습니다.”

그는 1년 만에 책을 출간했다. 출판사엔 잘 팔리지 않을 것 같으니 많이 찍지 말자고 부탁했다. 출판사가 처음 찍자고 한 책 부수에 기겁하고 절반만 해도 충분할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뚜껑을 열어보니 대박. 국민은 검찰을 멀리해야 할 대상으로만 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더 많은 관심을 두는 중이었다. 그도 그 이유를 고민해봤다고 한다. 그는 국민이 검찰을 보는 시선은 야구팬이 자신의 응원 팀을 보는 일과 비슷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열정적인 야구팬은 자기 팀을 있는 힘을 다해 응원하잖아요. 작은 실수만 해도 아픈 말을 하죠.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들의 날 선 말은 애정이 있어서, 조금만 더 잘해주길 바라는 데서 나오는 것이라고 봅니다. 국민은 검찰에 대해 애정을 품고 있어요. 다만 공정한 사회를 위해 좀 더 묵묵히, 좀 더 날카롭게 일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판하는 것 아닐까요.”

김 전 검사의 책은 유명세를 힘입어 같은 이름의 드라마로 제작됐다. 그가 대검찰청에서 미래기획·형사정책단장을 맡아 검경수사권 조정안에 대응한 일 또한 책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다만 개인적 삶의 변화는 없다고 했다. 그는 “메모하는 습관을 살려 글을 쓰는 데만 힘을 쏟았다”며 “몇 부가 팔리고 수익 창출이 얼마가 될지 등은 관심 사안이 아니었다”고 했다.

“정치내전요?…잘 읽힐까요?”

김 전 검사는 생활형 검사에 이어 ‘생활형 정치인’이 되고 싶다고 했다. 추후 ‘정치내전’ 같은 책을 쓸 생각은 없느냐고 물어보니 “흔한 정치 신인이 말하는 정치 이야기가 될 텐데 잘 읽힐지 모르겠다”며 수줍게 대답했다.

우리나라 정치인은 기록을 많이 남기지 않는 편 아니냐고 하니 “그런 점이 신기하긴 했다”며 “기록이 적은 것은 뿌리가 가는 것과 같다. 언젠가 불행한 일을 마주할 수 있다”고 했다. 그가 국회에 입성하고 또 ‘생활형 정치인’으로 활약한다면, 4년 또는 8년 후에 ‘국회내전’을 볼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가질 수 있을 듯 하다.

그의 생활신조는 일관성이다. 그는 “검사 때 사기 사건을 많이 접해서인지 말만 번지르르하면 괜히 경계심이 든다”고 했다. 그러면서 “진심은 말이 아닌 그 사람이 과거와 행동에서 나온다는 게 인생 철학”이라며 “제 과거를 아는 분은 제가 이 말을 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지 알 것”이라고 자신했다.

김 전 검사는 유승민·이혜훈 새보수당 의원 등의 영입 제의를 받고 지난달 국회에 첫발을 디뎠다. 당 안에선 곧장 법치바로세우기특별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저와 함께 변호사 사무소를 준비하던 친한 친구들도 당일 텔레비전(TV)을 통해 제 입당 소식을 들었어요. 거듭 사과했지만, 지금도 미안한 일입니다. 그만큼 정치인이 되기로 마음먹기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를 여의도로 이끈 것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였다. 정부와 검찰의 갈등을 보며 뜻을 굳히는 데는 1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김 전 검사의 어머니도 당일까지 몰랐다고 한다.

“권력 분산에 힘…할 수 있는 일 하겠다”

제가 할 수 있는 점을 찾아 집중해야죠. 국민에게 큰 희망을 주겠다는 등 허황한 의제를 꺼내는 일은 하지 않겠습니다. 지금 관심 두는 일은 권력기관 분산이에요. 우리나라의 도약을 막는 장애물 중 하나가 권력이 몇몇 기관에 집중된 데 따른 승자독식 구조라고 봅니다. 해외 선진국 대부분은 권력이 각 기관으로 흩어져있어요. “

김 전 검사는 권력기관 분산이 바로 이뤄져야 정치·사회 세대교체도 꽃을 피운다고 보고 있다.

“특히 청와대 비서실의 힘이 너무 세요. 아예 민정수석실을 만들지 못하게 하거나, 위치를 국무총리실 급으로 낮추는 등 조치가 필요합니다. 제가 그간 보니, 우리나라에서 일반 국민이 살기 좋을 때 특징이 있었어요. 각 부처 장관들의 이름이 곳곳에서 오르내린다는 겁니다. 청와대 비서관의 이름만 알려질 땐 반대 분위기가 조성됐습니다. 전문성을 갖는 각 부처가 힘을 받아야 살기가 좋아진다는 뜻입니다.”

김 전 검사는 미래통합당에서 서울 송파갑으로 공천을 받고 4·15 총선 선거운동에 집중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적극적 유세 활동은 힘들 때다.

“온갖 채널을 통해 주민 목소리를 듣고, 편견 없이 정확히 판단하겠다는 생각뿐이에요. 지역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온화합니다. 넓고 녹지 많은 환경의 영향도 있겠지요. 하지만 저도 그럴수록 더 빨리 알아듣고, 더 크게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미국을 보면 매사추세츠는 존 F. 케네디, 시카고는 버락 오바마 등 도시를 떠올리면 바로 생각나는 정치인이 있습니다. 저 또한 주민에게 사랑받는 대표 일꾼이 되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원율 기자/yul@heraldcorp.com

▶김웅 전 부장검사 프로필

▷학력=1988년 순천고등학교 졸업, 1993년 서울대 졸업.

▷경력=2000년 인천지방검찰청 검사, 2002년 창원지검 진주지청 검사, 2004년 서울중앙지검 검사, 2006년 법무부 법무심의관실 검사, 2008년 광주지검 순천지청 검사, 2013년 서울남부지방검찰청 검사, 2014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 2015년 해남지청 검사, 2016년 법무연수원 용인분원 검사, 2017년 인천지검 공안부장, 2018년 대검 미래기획·형사정책단장, 2019년 법무연수원 검사교수, 2020년 새로운보수당(현 미래통합당) 입당.

▷기타사항=2018년 검사내전(부키 출판사)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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