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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상의 오지랖] “김경수 지사님, 고맙지만 100만원 안받을래요”
김 지사 “국민에 100만원씩 재난기본소득 지급” 제안 논란
네티즌 “국민세금으로 선거운동 하시는 건가요” 등 싸늘해
일부 “좋은 아이디어”…그러나 대체로 포퓰리즘으로 치부
야당에선 “전형적인 총선용, 허무맹랑한 주장일 뿐” 폄하
‘고소득층자 기본소득 내년 세금으로 환수’도 어설퍼 보여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지난 8일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위기에 빠진 경제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전 국민에게 1인당 재난기본소득 100만원을 지급할 것을 정부와 국회에 건의하고 있다. [연합]

수년 전 몽골에 갔을때다. 몽골 청년들의 야학 봉사를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몽골의 두 청년을 만났는데, 한 명은 의대생이었고, 또 다른 한명은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였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의 한 야학 현장에서 둘을 인터뷰했다. 두 사람은 중국의 핍박을 벗어나는 게 몽골의 최대 현안이자, 자신들의 꿈이라고 했다. 그러기 위해선 무조건 더 배워야 한다고 했다. 이들이 야학을 통해 어린 친구들에게 배움을 전수해주고 있는 것은 이때문이라고 했다. 둘은 울란바토르 외곽의 한 집에서 집단 숙식하는 어린 친구들을 위해 외국어 등을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아이들이 우리 미래입니다. 우리가 외국유학을 가지 않고 몽골에 남아 이들에게 멘토가 되려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죠. 다 떠나면 누가 아이들을 가르치나요?”

몽골의 정치환경을 얘기할때, 둘은 상당히 머쓱해했다. “몽골은 선거가 있을때마다 대학생 등 젊은이들에게 돈을 준다고 하던데, 그게 과연 옳은 일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나서였다. 실제로 몽골에 가기 전 그 나라에 대해 공부를 했는데, 몽골은 선거철이 되면 광산 하나를 팔아 젊은이들에게 우리돈 100만원 이상을 주는 일도 일상사가 됐다고 했다. 몽골은 금광, 구리, 석탄 등 천연자원이 풍부한 나라로 꼽힌다. 대통령선거 등을 앞두고 집권자가 광산 한두개를 외국에 팔아 그 돈을 뿌리고, 다시 당선되는 일이 많았다는 것을 몽골에 가기 전에 귀동냥 했던 것이다. 그게 과연 사실이고 그렇다면 이게 좋은 정책인가라고 물은 것이다. 그때 의사 지망생의 말은 이랬다. “아, 후진적 정치구조, 이걸 없애야죠. 그래야 몽골이 발전할 수 있습니다. 물고기보다는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줘야 우리의 미래가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죠.” 우회적인 표현이었지만, 그가 매우 부끄러워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당장의 ‘현금 복지’보다는 중장기 ‘교육 복지’가 몽골의 앞날을 위해선 더 유효하다는 뜻이 담긴 답이었다. 참으로 인상 깊은 청년이었다. 살짝 물어보니 그는 집안도 좋은 청년이었고, 얼마든지 외국유학을 떠날 수 있는 환경이었다. 그렇지만 “다 떠나면 누가 아이들의 눈을 뜨게 해주겠는가”라며 외국 대신 야학 선생님을 택했단다. 빛나는 사명감이 감동적이었다. 지금도 몽골에서 선거철이면 돈을 뿌리는 일이 여전한지는 잘 모르겠다. 세월이 지났으니 몽골의 정치적 환경도 달라졌을지 모를 일이다. 다만 그때 만난 두 청년의 묵직한 눈빛은 아직도 기억이 선명하다.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경제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고자 아이디어 하나를 내놨다. 골자는 “모든 국민에게 100만원의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자”는 것이다. 코로나19로 경제가 너무 어려워졌기에 내수시장을 살릴 특단책이 필요하고, 모든 국민에게 100만원을 주는 게 하나의 방책이라고 제안한 것이다. 내수를 살릴 대책으로 추경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게 논리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지난 8일 오후 대구시 수성구 대구스타디움에서 면마스크를 쓰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지원 물품 현장 점검을 하고 있다. 정 총리는 앞서 ‘마스크 구매 5부제 시행’ 관련 국민 협조를 당부하며 공직사회부터 면마스크 사용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연합]

9일 정치권에 따르면, 김 지사는 지난 8일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전 국민에게 1인당 재난기본소득 100만원을 지급할 것을 정부와 국회에 건의했다. 그는 “코로나19가 국가 간 교역과 수출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지금 내수시장을 과감하게 키울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며 ‘모든 국민에 재난기본소득 100만원씩의 지급’이 유효한 대책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지사는 “정부에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이는 현재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임시대책”이라며 “세계 경제가 위축될 때 선진국들은 내수시장을 과감하게 키워 위기를 극복했으며 우리도 그런 대책을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그 대책이 바로 ‘100만원 지급’이라는 것이다. 그는 나아가 “1인당 100만원을 지급하려면 약 51조원의 재원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경제를 활성화하고 재정부담은 내년도 조세수입 증가를 통해 완화할 수 있다”며 “전문가들에 따르면 재난기본소득을 시행할 경우 조세수입이 8조∼9조원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일단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가 얼마나 심각하면 이런 아이디어를 냈을까 싶을 정도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사실 코로나19 확산세로 전국경제는 물론 지역경제는 황폐화되고 있다. 전국 유통가는 휴업 또는 폐업의 몸살을 앓고 있으며 놀이공원이나 영화관에 손님이 끊긴지는 오래다. 코로나19로 유독 힘든 지역에서의 지역경제의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커 보인다. 코로나19 확산세가 멈추거나 사라지지 않으면 지역경제 활성화 문제는 답이 없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오죽했으면 김 지사가 이런 제안을 했겠느냐는 말도 나온다.

요즘 코로나19 강경대응으로 주가가 한껏 올라간 이재명 경기도지사도 여기에 힘을 보탰다. 이 지사는 김 지사의 제안이 나오자 곧바로 “투자할 돈이 넘쳐 저성장이 일상이 되는 시대에 경제흐름을 되살리고 지속성장을 담보할 유일한 정책은 기본소득”이라며 “김경수 지사를 응원한다”고 했다.

하지만 네티즌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좋은 아이디어”라며 이 지사 처럼 응원한 이도 적지 않지만, ‘현금복지’로 현위기를 넘겠다는 저의가 있다고 의심하는 시각이 우세하다. 일단 선거를 겨냥한 포퓰리즘이라는 시각이 많다. “총선이 다가오니 포퓰리즘이 도지는군요”, “국민세금으로 선거운동을 하시는 건가요” 등의 댓글이 대표적이다. 현금 복지에 대한 경계심도 엿보인다. “국민 여러분, 정신 바짝 차립시다. 우리 아이들에게 빚더미 나라를 넘겨줄 수는 없습니다”라는 댓글도 눈에 띈다.

국민 세금으로 ‘돌려막기’가 될 것이라는 시각도 나왔다. “저 100만원 받자고 세금 얼마를 더 내야하나 싶어 한숨만 나옵니다”, “또 세금 내라는 얘기와 무엇이 다르지요”, “지사님, 고맙지만 세금과 관계없이 저는 100만원 안받겠습니다”라는 불만성의 꼬집는 글도 이어졌다. 시장경제 사고를 해친다는 지적도 있었다. 한 네티즌은 “저 한달 휴원한 공부방 (운영)하는 사람입니다.당연히 이번 달 수입 없습니다. 그래도 이건 아니죠. 1인당 100만원 좋죠. 주면 가계에 보탬은 될테죠. 그런데 이젠 소득도 분배해 주시나요?”라고 적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 상황실에서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이 지난 8일 승강기에 올라 음압병실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

김 지사가 제안한 ‘고소득층에 대한 세금 환수’도 방법론적으로 간단치 않은 사항으로 거론된다. 김 지사는 “재난기본소득을 필요로 하지 않는 고소득층에 대해서는 내년도에 지급한 금액만큼 세금으로 다시 거두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안한다”고 했다. 소득이 많은 사람은 100만원이 필요하지 않기에 일단은 지급하되 내년에 세금으로 환수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어디까지 고소득층으로 정할지, 그 문제를 두고 논란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 네티즌 역시 “일단 100만원을 받은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그가 일반적으로 여겨지는 고소득층이라고 합시다. 그런데 세금으로 다시 100만원을 환수한다면 그 사람이 좋은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내가 왜 고소득층인지 증명해달라’고 불쾌해 하지 않을까요?”라고 적었다.

야당은 김 지사의 제안이 ‘총선용’이라며 곱잖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야당 관계자는 “당장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모든 국민에게 100만원씩 주자는, 큰 고민없이 툭 던진 것으로 보이는 그런 제안은 당연히 총선을 의식한 것이 아니겠는가”라며 “우리 국민의 눈높이가 있고, 철학이 있기 때문에 포퓰리즘 냄새가 다분한 허무맹랑한 얘기로 치부될 것”이라고 했다.

수년전 만난 그 몽골 청년들이 이 얘기를 들었다면 뭐라 말할지 모르겠다. 현금복지의 위험성을 일찌감치 간파한 그들로선 “저 라면 100만원 안받을래요라고 할래요”라고 했을지 모르겠다.

김 지사의 아이디어가 아이디어 차원으로 끝날지, 새로운 논쟁으로 번질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이래저래 가뜩이나 코로나19로 힘든 국민들을 복잡한 심경으로 이끈 것은 분명하다.

〈헤럴드경제 기자, 마케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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