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N “미 당국 주시” 보도 후 확산
정체불명 ‘북 소식통‘, 출처불명 ‘시나리오’ 확산
태영호·지성호 등 탈북민 출신 정치인도 가세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노동절(5·1절)이었던 지난 1일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에 참석했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김 위원장의 지시를 박봉주 국무위원회 부위원장 등 간부들이 수첩에 받아적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북소식통→국내 매체→외신보도→국내 언론→북소식통→정치권→국내언론→외신보도→국내언론→북소식통→…’
2일 조선중앙방송의 보도로 사실상 오보 판명이 난 ‘김정은 건강이상설’은 북한 관련 ‘루머’나 가짜뉴스가 확대재생산되는 순환 과정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됐다. 순환의 고리는 국내외, 특히 한미 매체간 상호인용과, 외교가와 정가·언론의 정체불명 ‘북한 소식통’, 정치권·증권가의 이해와 결합된 ‘찌라시’(사설 정보) 등 세 가지로 요약된다. 즉 국내 언론이 ‘북한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하면 미국 언론이 이를 인용, 후속보도에 나서고 이를 다시 국내 언론이 받아쓰면서 확대재생산되는 형식이다. 이 과정에서 ‘북한 소식통’에 따른 자체 첩보를 주장하는 정치인들이 가세하고, 여기에 더해 정가와 증권가에서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실은 ‘찌라시’가 각종 루머를 더 키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신변이상설은 오보의 유통경로를 제대로 밟았다. 그 결과 ‘건강이상설’은 ‘위중설’ ‘중태설’ ‘식물인간설’을 거쳐 ‘사망설’로 굳혀졌다. 탈북민 출신 21대 국회의원 지성호 당선인의 “99% 사망” 발언이 대표적이다. 북한 최고권력 후계구도까지 전망하는 보도와 예측이 잇따랐다.
그러나 김정은 건강이상설은 열흘여만에 거짓으로 판명됐다. 조선중앙방송과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매체들은 2일 김 위원장의 전날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 참석 소식을 전했다. 김 위원장이 비교적 건강한 모습으로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과 김재룡 내각 총리 등 간부들과 공장 내부를 둘러보는 사진도 덧붙였다.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은 김 위원장이 지난 4월 15일 김일성 주석의 생일 금수산태양궁전참배에 불참한 것이 계기가 됐다. 첫 보도가 나온 것은 국내 보수 성향 북한 전문매체였다. 지난 4월 20일 데일리NK가 “김 위원장이 12일 평안북도 묘향산 지구의 향산진료소에서 심혈관 시술을 받고 치료 중”이라고 보도했고, 이를 다시 국내 주요 언론사 한 곳이 받아 전했다. 그러자 하루 뒤 미국 CNN방송이 미국 관리를 인용해 김 위원장이 수술 후 심각한 위험에 빠진 상태라는 정보를 미 정부가 주시하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본격적으로 확대재생산되기 시작했다. CNN방송의 당시 보도는 데일리NK의 보도에 대한 미국 당국의 반응과 자체 첩보를 취재하던 중 나왔을 가능성이 커 보였다.
이에 청와대와 통일, 국방부 등 정부는 “북한 내부에 특이 동향이 없다”는 입장을 줄곧 지켰다. 김 위원장이 지방에 체류 중인 것으로 보인다는 언급도 있었다. 청와대, 정부의 입장은 김 위원장의 정상적인 통치활동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데 무게가 쏠렸다. 북한 매체는 그사이 김 위원장의 축전 교환, 감사 전달, 생일상 전달 등 김 위원장의 동정 보도를 계속했다.
그럼에도 김 위원장의 공개 행보가 북한 공식 매체를 통해 발표되지 않자 건강이상설은 증폭되기만 했다. 한국과 미국은 물론 중국, 대만에서까지 외교가의 전언이나 ‘북한 소식통’을 인용한 보도와 발언이 잇따랐다. 이 와중에 탈북민 출신 정치인의 발언은 루머의 수위를 더 높였다. 탈북민 출긴인 미래통합당 태영호 당선인은 지난 28일 CNN과 인터뷰에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김 위원장이 스스로 일어서거나 제대로 걷지 못하는 상태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 지난 1일에는 탈북자 출신인 미래한국당 지성호 국회의원 당선인이 “김 위원장 사망 99% 확신”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그 가운데 정가와 증권가에선 김 위원장의 사망과 미국과 중국의 대응, 후계 권력구도의 방향까지 담은 몇 가지 버전의 ‘찌라시’가 나돌기도 했다.
suk@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