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서부이촌동 등 문의 빗발
“이번엔 확실한가” 확인 전화도
인근 지역까지 ‘과열 확산 우려’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추진
서울 용산구 서부이촌동 중산시범아파트. 양영경 기자 |
“그렇다고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길게 보고 가셔야죠”
지난 8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부이촌동의 한 공인중개업소. 공인중개사는 “당장 매물을 사들여야 하는 게 아니냐”는 손님의 전화에 조곤조곤 설명을 이어갔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한 여성의 목소리엔 조급함이 느껴졌다. 정부가 지난 6일 용산역 철도 정비창 부지에 8000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밝힌 이후의 일이다. 이 중개사는 통화목록을 살피며 전날에도 비슷한 문의가 20건 가량 들어왔다고 했다.
용산 일대 부동산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서울 중심 ‘금싸라기 땅’이지만 수년간 방치됐던 철도 정비창 부지(51만㎡)를 정부가 개발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 부지의 30%에는 임대주택 2000가구 이상을 포함해 총 8000가구가 들어선다. 도심 한복판에 ‘미니 신도시’가 생기는 것이다.
정비창 부지와 맞닿은 서부이촌동엔 집주인은 물론 외부 부동산, 투자자의 문의가 집중됐다. 낮기온이 26도까지 오른 이날, 중개업소들은 문을 활짝 연 채 손님을 맞거나 전화 응대를 하는 데 분주한 모습이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거래는 물론 문의조차 뜸했던 데서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입을 모았다.
집주인 대부분은 긴가민가하고 있다는 전언이 이어졌다. 그간 개발사업이 번번이 좌초됐기 때문이다. 정비창 부지는 2006년 서울시의 ‘한강르네상스’ 사업과 연계해 용산국제업무지구로 개발될 예정이었다. 사업비만 31조원 규모로 ‘단군 이래 최대 개발사업’이라는 별칭도 붙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사업이 백지화됐다. 2018년엔 박원순 서울시장이 ‘여의도·용산 통개발’ 구상을 내놓으면서 재차 주목 받았다. 하지만, 서울 주택시장이 달아오르자 계획이 무기한 보류됐다. 이촌동 대림아파트 인근 A 중개사는 “이번 개발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은 지 묻는 집주인이 많았다”며 “다만 임대주택이 대거 들어오는 것에 대한 우려도 컸다”고 했다.
이 일대는 아파트 단지를 다 합쳐도 2000여가구로, 매물 자체가 많지 않은 곳이다. 개발 계획이 나온 직후여서 기존 매물과 호가는 대체로 유지되고 있지만, 발 빠르게 움직인 사례도 속속 나오고 있다. B 중개사는 “중산시범, 대림아파트에서는 집주인이 매물을 거둬들인 사례가 나왔고 나머지 단지는 계속 내놓을 건지 확인해야 하는 단계”라며 “꼭 팔아야 하는 사람 중에선 호가를 2000~3000만원 올리겠다는 사람도 있었다”고 했다.
매수 희망자도 마찬가지다. C 중개사는 “외부 부동산에서 시범아파트 거래를 하겠다고 계좌번호를 달라는 연락이 왔다”고 했다. 현장에선 대림아파트 매물을 보고 왔다는 사람도 만날 수 있었다. 거래를 서두르는 사람은 이 지역의 집을 오랜 기간 봐왔던 사람들이라는 게 중개사의 설명이다.
정부는 가격 상승 조짐에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카드를 꺼내들었다. 조만간 중앙도시계획위원회를 열어 정비창 부지와 인근 지역의 허가구역 지정 논의를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또 합동 투기단속반도 투입해 대대적인 단속에 나서기로 했다.
해당 구역으로 지정되면 주거·상업 등 용도별로 일정 면적을 초과하는 토지를 취득할 때 관할 시군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토지를 취득한 용도로만 사용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주택은 실거주 가능한 무주택자만 취득할 수 있고, 상가도 직접 운영해야 매수가 가능하다. 양영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