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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T과학칼럼] 원격진료, 왜 안 되는데?

가보지 않은 길을 갈 때는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한다. 그 길의 끝이 잘 안 보일 때는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더 크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지금 세계는 시계 제로다.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다. 대한민국이 포스트 코로나의 주인공이 되려면 모두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한다.

최근의 언택트 생활로 4차 산업혁명의 변화에 대한 수용도가 높아졌다. 이러한 변화는 바이러스 방역 및 감염증 치료와 관련된 보건·의료 분야가 이끌고 있고, 그 중심에 원격진료가 있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포레스터 리서치’는 올해 미국의 원격진료가 코로나 이전에 예상했던 것보다 28배나 증가한 10억건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EU·일본에서도 원격진료시장이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ICT 기술과 의료 시스템을 갖추고도 아직 시작도 못 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갤럭시워치는 지난 5월 식약처로부터 심전도 측정 허가를 받았는데, 국내에서는 측정 데이터를 의료진에게 송부할 수 없다. 의료법상 불법이기 때문이다. 반면 애플워치의 심전도 측정 데이터는 이미 전 세계 35개 국가에서 원격진료에 사용되고 있다. 심전도를 실시간으로 측정하면 부정맥 등 이상 징후를 사전에 포착해 뇌졸중·심부전증 등 합병증을 예방할 수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긴급 대응을 할 수 없으니 있으나 마나 한 기능이다.

갤럭시워치는 지난 4월 세계 최초로 혈압 측정 기능도 개발했다. 우리나라는 이처럼 ICT 기술과 의료 시스템뿐만 아니라 스마트기기의 경쟁력도 세계 최고다. 앞으로 스마트 디바이스가 혈당·혈류·산소포화도 측정까지 할 수 있게 되면 디지털의료 세계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그만큼 기회도 커질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원격진료를 의사들은 왜 그렇게 반대할까. 표면적인 이유는 오진 위험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러나 의사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환자의 대형 병원 쏠림’이 원격진료에 대한 가장 큰 우려(61.7%)로 나타났다. 생존의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정부도 그냥 밀어붙이기보다는 이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대안을 찾아야 한다. 1999년 의약분업 때도 병원 휴업 등 의사들의 심한 반발로 이어졌지만 결국 합의점을 찾았고 이는 의료선진국이 되는 토대가 됐다.

세상의 이치는 합리적으로 흘러가게 돼 있다. 결국 모든 나라에서 디지털의료가 보편화될 것이다. 머뭇거린다면 다른 나라에서 길목을 선점하고 통행료를 받을 것이다. 코로나19로 전화진료 경험과 편리함을 알게 된 지금이야말로 이 문제를 공론화할 절호의 기회다.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풀기는 어렵다. 그래서 서로 신뢰를 쌓아가며 한 걸음씩 나가야 한다. 우선 동네 병원에서 진료하기 힘든 고위험 환자로 한정해 시작해볼 수 있다. 일본처럼 ‘초진은 병원, 이후 몇 번 원격진료 후 다시 병원 방문’ 같은 원칙을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 환자가 대형 병원으로만 쏠리지 않도록 1~2차와 상급 병원 간 역할 분담도 필요하다. 병원 방문 축소와 긴급 대응으로 줄어드는 사회적 비용을 진료비 인상 등을 통해 동네 병원 수입 보전에 사용하는 것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가 세계 디지털의료시장을 선점한다면 의료계 전체의 파이가 엄청나게 커질 것이다. 이 파이를 잘 나눈다면 의사들과 국민 모두 상생의 길을 만들어갈 수 있다. 규제 때문에 이 거대한 디지털의료시장을 포기해야 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양성광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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