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하라리는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을 인류 역사의 진로를 형성한 세 가지 혁명이라고 이야기했다. 이 세 가지 혁명의 공통점은 그 혁명이 인간 개체로 이뤄낸 것이 아니라 인간 사회라는 군집의 힘을 가지고 이룩한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류 성장의 요체인 사회화와 군집화를 항상 방해해오던 존재가 있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감염병이다.
현대 인간 사회를 움직이는 것은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불현듯 찾아온 바이러스 감염병으로 인해 이 관계가 불과 몇 달간 위축되었을 뿐임에도 거의 모든 나라는 막대한 손해를 입고 있다. 감염병으로 인한 관계의 단절은 인류문명의 존립마저 위태롭게 하는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감염병은 사람과 사람의 사이를 벌어지게 만든다. 감염의 우려에서 기인하는 서로에 대한 불신과 갈등, 그리고 감염자에 대한 극도의 혐오와 증오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 이러한 반목과 불신은 공동체 의식을 무너뜨리고 사회 균열을 만들어낸다. 새로운 감염병은 우리 사회의 그러한 구조를 어찌 알았는지 그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위협하고 있다. 관계의 단절에서 비롯되는 사회 균열과 집단 붕괴, 그리고 이를 막기 위한 교류를 통해서 다시 전파·확산되는 감염, 이 전방위적 압박을 막아내기 위하여 무엇이 필요할까.
최고의 방안은 당연히 치료제와 백신이다. 하지만 문제는 개발 시점이다. 코로나19 치료제, 백신 개발에도 오랜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 이 경우의 대비책도 준비해야 하는데 우리에게 K-방역으로 잘 알려진 확산 방지체계가 그 차선책이라 할 수 있다.
치료제와 백신이 없는 동안에는 확산 방지체계의 우수성이 대응의 성패를 좌우하므로 과학기술을 활용해 발전시켜야 한다. 지금보다도 더욱 신속·정확하게 감염자를 찾아내는 진단기술, 감염 우려자를 더욱 완벽하고 찾아내어 격리할 수 있는 기술, 집단감염을 예방하기 위한 예보 혹은 경고 시스템 등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재확산 예방체계가 고도로 발전한다면 치료제와 백신 없이도 우리는 충분히 이 감염병을 통제할 수 있다.
상상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마저도 이뤄지지 않는다면 인류는 사회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바이러스와 장기전을 치러야 한다. 즉 집단의 붕괴와 감염병의 확산을 모두 막아낼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다. 우선 가능한 방법은 비대면 교류를 활용해 인간 사회의 관계를 유지해나가는 것이다. 때마침 찾아온 4차 산업혁명의 산물인 IT기술을 활용한 온라인 가상현실 시스템, 그리고 구독경제, 전자상거래, 암호화폐 등 비대면 경제활동 플랫폼, 바이러스 확산을 최대한 저지할 수 있는 스마트 방역시스템 등을 활용해 인간의 사회활동을 유지하면서 치료제, 백신 등의 결정타를 준비해 나가야 한다.
결국 코로나19 치료제나 백신 개발에는 상상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도 있다. 치료제나 백신이 개발된다고 할지라도 이 바이러스는 형태를 바꿔 훨씬 더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혹은 유연하게 공존할 수 있는 모습으로 언젠가 우리를 다시 찾아올 것이다. 때로는 싸워서 물리치기도 하고, 때로는 공존을 선택하기도 하겠지만 결국 해답은 과학기술에 있다.
남주곤 안전성평가연구소 연구전략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