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민주당은 싸워야 할 대상이 너무 많습니다. 서민 주거안정을 가로막는 부동산 투기세력, 검찰개혁은커녕 대선에만 관심 있는 윤석열 검찰총장, 바이러스테러범을 방조한 김종인 위원장의 미래통합당이 그것입니다.”
지난달 29일 끝난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과정에서 한 최고위원 출마자가 한 말이다. 살벌한 수사를 동원한 이 발언에 현 집권여당의 한 단면이 담겼다. 실제 집권여당의 차기 지도부를 선출하는 자리에서 조정·협치·통합과 같은 단어는 듣기 어려웠다. 예상대로 민주당 전대를 ‘친문(親문재인)’세력이 지배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문재인 정부의 입장에 동조하지 않으면 맞서 싸워야 할 ‘적’으로 몰아붙이는 여권 내 ‘매파’가 당을 주도하고 있는 양상이 여전하다는 얘기다.
이번 전대 과정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그동안 정부·여당이 내놓은 정책과 법안을 살펴보면 특정 세력을 겨냥한 ‘징벌적 성격’이 짙었다. 임시국회가 열리자마자 ‘임대차 3법’을 비롯한 부동산법안들이 단독 처리되며 고질적인 부동산 문제의 책임은 임대인·다주택자에게 돌아갔다. 투기꾼과 무주택 서민, 이분법적으로 나뉜 정책하에 국민 갈등은 점입가경이 됐다.
비판세력을 적으로 놓고 싸우려다 보니 민주당은 그동안 당·정·청의 ‘일사불란’을 강조했다. 금태섭 전 의원이 공수처 설치에 대해 당론에 반하는 의견을 견지했다고 징계하고, 때로는 특정 언행에 대해 당대표로부터 ‘하명’이 떨어진 건 이와 무관치 않다. 당 지도부를 떠나는 김해영 전 최고위원이 “우리가 절대선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가장 낮은 곳에서 모든 물줄기를 받아안는 바다 같은 리더십으로 대한민국의 새 미래를 이끌어달라”고 부탁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거대여당의 역할은 나머지를 밀쳐내며 분열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다름을 인정하며 통합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어야 한다. 늘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면 불특정다수에 대한 폭력으로 변질될 수 있다. 이른바 ‘민주당 편’에 들지 못하는 사람들이 상처 입고 무력감에 빠진다. 굳어진 ‘편 가르기 문화’ 속에서 사회는 위기에 취약해진다.
그래도 새롭게 집권여당 수장이 된 이낙연 대표에 희망을 걸어본다. 근거는 그가 총리 시절 보여준 협치철학이다. 그는 ‘생각은 진보, 태도는 보수’라는 평가를 받는 정치인이다. 달리 말하면 정치적 균형감각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신중성과 안정감도 장점으로 꼽힌다. 이 대표는 공수처법 개정에 대해 끝까지 말을 아끼고, 주요 현안 때마다 당내 토론부터 거쳐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생각이 다른 이들을 ‘적’보다는 ‘설득의 대상’으로 바라봐주길 희망한다.
이 대표는 당대표 수락연설에서 ‘원칙 있는 협치’를 이야기했다. 그 말을 받아 한 마디 보탠다면 원칙 따로, 협치 따로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지금 우리 정치에선 협치가 곧 가장 필요한 원칙이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