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별지급으로 결론난 2차 재난지원금 논쟁에서 이 지사가 “당과 정부의 결정에 따르겠다”며 패배를 선언했다.
하지만 이 지사는 전투에선 졌지만, 대권 전선에선 한 걸음 더 나갔다.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설전을 주고받으며 당권 1위와 버금가는 당 내 대권 2인자로 도약했다.
이 지사는 4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글을 통해 재난지원금 공방전의 전선을 야당 대표로까지 넓혔다. 국가채무 급증에 대해 문 대통령을 비판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향해 “아무리 정치적 상대고 감정이 있더라도 대통령은 5000만 국민이 뽑은 국가의 대표라는 사실을 잊지 마셨으면 좋겠다”며 “경제위기에 가계부채증가 억제하고 경제회생시키려고 다른 나라보다 턱없이 적은 국채 조금 더 발행한 것이 패륜인가”라고 반박했다. 아직까지 자신과 이 대표 사이에서 마음을 정하지 못한 친문 지지층에 대한 적극적인 구애다.
동시에 정부와의 전쟁에서는 패배를 인정했다. 이 지사는 선별 지급으로 결정난 2차 재난지원금과 관련 “논쟁은 열심히 할 수 있고 이견은 낼 수 있지만, 결정되면 한목소리로 부작용 없이 지원하고 협력해야 한다”며 홍 부총리와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홍 부총리로 상징되는 당정과 싸움에서 항복한 이 지사를, 차기 대권이라는 전선에선 진일보한 승장으로 평가했다. 정책 논의를 통해 선명성을 부각시키며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진보 진영에서 존재감을 한없이 높이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이 지사 측 인사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최근 지지율 상승에 대해 “재판에서 무혐의가 나오고 이 지사에 대한 선입견이 풀리며 유권자들의 부담도 덜어진 결과”라고 설명했다. 또 현 대통령이 아닌 차기에 대한 대안을 찾아야 하는 집권 후반기 특수성도 소위 친문 유권자를 중심으로 지지가 늘어나는 배경이라고 덧붙였다.
2차 재난지원금 지급 범위와 관련 정부와 당 지도부, 특히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대립이 부각된 것도 이 지사에게는 결코 손해가 아니다. 이 의원은 “정책적 대안을 갖고 논의하는 것은 국민에게도 이해에 더 도움이 된다”며 논쟁 자체가 가져온 긍정적 효과를 기대했다.
민주당 내에서 이 지사에 비판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인사들도 이 점에 동의했다. 이 지사측과 대립각을 세워온 당내 한 중진은 “우리나라 국민 중 보편복지가 진보의 가치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을 공략한 것”이라며 2차 재난지원금 지급 범위와 관련된 홍 부총리와 논쟁이 차기 여당 대권 주자라는 선물을 이 지사에게 줬음을 인정했다.
실제 여론의 흐름도 마찬가지다. 리얼미터가 매달 발표하는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해 ‘매우 잘한다’라고 답한 적극 지지층 중 이 지사 지지율은 1월 7%에서 8월 31.1%까지 급상승하며 부동의 1위였던 이낙연 민주당 대표와 대등한 수준까지 올라섰다. 특히 2차 재난지원금 논의가 시작된 7월과 8월 상승세가 컸다. 이 지사를 ‘철없는 정치인’으로 평가절하했던 홍 부총리가 정치적으로는 이 지사 대통령 만들기의 1등 공신이 된 셈이다.
정치권에서는 이 지사가 향후 당을 넘어 중도층 표심 잡기에도 본격적으로 나설 것으로 전망했다. 이날 안철수 대표와 새로운 전선을 펼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 지사계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현장에서는 이 지사에 대한 반감을 크게 느낄 수 없다”며 “이제 누가 시대정신에 더 부합한 인물인지 합리적인 국민이 선택을 잘 해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최정호·김용재·홍승희 기자